(서울=연합인포맥스)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가장 중요한 것 때문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치거나 죽는다.

가정과 직장생활을 하면서 '말(言)'의 위력을 점점 실감한다. 혀가 주는 행복과 상실감과 상처에 대해서는 긴말이 필요 없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이런 속담은 곱씹을수록 진리다.

철학자들은 말을 물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베개에, 옷에 스며들고, 심지어 세포에도 스며든다.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사람의 몸은 항상 세포의 원자핵이 진동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을 방출한다. 말은 이러한 인간의 에너지 파동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과학적 실험의 결과다.

최근 국내 최대의 엘리트 집단이라는 삼성그룹 임원 집단 연수에서 부하들에게 '어떤 경우라도 막말을 금지하라'는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

작년, 그룹 내 한 계열사의 고위 임원이 업무 중에 부하에게 욕을 했다. 인격 모독에 분개한 부하가 이메일로 즉각 항의하고 사표를 제출하자 회사가 경위조사에 나섰다. 해당임원은 물의를 빚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고, 해당 직원은 현재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다. 이 일이 있은 이후부터 임원연수에서는 '상사가 부하를 대할 때의 의사소통 능력'을 필수 교과목으로 채택했다.

상사들은 과거 자신들의 회사생활에서 상하 관계가 '전(全) 인격적인 관계'였다. 상사의 지시가 곧 법이었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신인류' 부하들이 출현하면서 당혹스러워졌다.

사내 메신저와 스마트폰 문자로 무장한 부하들은 상사에게 야단맞는 순간에 실시간으로 다른 동료에게 생중계하듯 내용을 퍼 나른다. 해당 상사는 상사와 부하 둘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으로 얼버무리는 동안 다른 모든 이들은 알게 된다. 행여 야단치는 중에 막말이라도 했다가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상사는 실시간으로 매장당한다. 상사의 처지에서는 후배를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한 방법론이고, 막말도 하나의 '터프 러브(Tough Love)'라고 이해해 주겠거니 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젊은 부하들은 상사가 기본적 예의나 원칙을 넘어서면 참지 않는다. 예전 군대 문화와 같은 상명하복, 일방통행식 소통은 더는 먹히지 않게 됐다.

삼성의 한 임원은 "상사가 아랫사람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됐다"고 토로했다. 인사 관리에서 다면평가가 일반화된 탓에, 자칫 막말을 했다가는 상사도 언제 최하 평가를 받을지 모르게 됐다.

모든 기업의 생산성은 종업원의 사기에 좌우된다. 사기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말이다. 그러므로 말이 곧 생산성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존경받고 사랑받고 싶은가. 가는 말부터 곱게 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 대책이 없는 세월이 왔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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