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장용욱 기자 = 지난 달 말 한국장학재단이 보유중인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매각을 주관하는 동양증권에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서 만나고 싶다는 한통의 전화가 왔다.

지분 매각 주관업무를 담당하는 동양증권 인수ㆍ합병(M&A)팀은 요청을 받아들여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을 만났다.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은 장학재단의 에버랜드 지분매각 상황과 투자자 수요 등에 대해 궁금해 했고, 가급적 에버랜드 지분이 다수의 소액주주 보다는 기관투자가들에게 넘겨지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넌지시 전하기도 했다.

오는 8일과 9일 이틀간 진행되는 장학재단의 에버랜드 지분 4.25%에 대한 공개 매각 입찰에 삼성그룹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장학재단과 동양증권은 에버랜드 지분을 팔겠다고 공표한 지 딱 1년만인 지난달 초 매각공고를 내고,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으로 공개 매각 입찰을 진행한다.

이는 특정 매수 주체를 상대로 한 매각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입찰이다. 개인들도 에버랜드 주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실제 주요 증권사와 은행, 자산운용사는 신탁계정과 사모펀드 등을 통해 소위 '강남부자'로 통하는 거액자산가들로부터 돈을 모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에버랜드에 대한 희소가치가 높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거액자산가들의 수요도 많은 편이다.

실제 뚜껑을 열어봐야 하겠지만 금융권에서는 매각 지분의 절반 가량을 거액자산가들이 채울 것이란 전망마저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입찰을 하루 앞두고 삼성그룹이 '에버랜드의 상장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나섰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이인용 부사장은 7일 기자들과 만나 "개인 투자자들이 상장 차익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도 있을텐데 상당 기간동안 상장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한다"고 밝혔다.

"상장 차익을 기대하고 들어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삼성은 지금껏 에버랜드의 상장 가능성에 대해 부인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삼성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이 매각 주관사 실무진을 만나고, 그룹이 나서 직접 상장 계획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 것은 이례적이다.

삼성이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금융권에서는 에버랜드에 다수의 소액주주들이 생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현재 에버랜드의 지분 구조를 보면 개인주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3.72%)과 이재용 사장(25.10%),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8.37%),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8.37%), 고 이병철 회장의 넷째 딸 덕희씨의 장녀인 이유정씨(0.50%) 등 5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에 장학재단이 개인투자자들에게 지분을 매각하게 되면 수백명의 소액 개인주주들이 새로 나타날 수 있다.

소액주주들이 실제 손에 쥐게 되는 주식은 많아야 수십주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으면서 오너 일가와 일부 계열사들이 지분을 독점하던 기업에 다수의 소액주주들이 생기는 것은 삼성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이인용 부사장이 "기관투자가들이 장기보유 목적으로 매입하는 것은 상호 윈-윈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이 동양증권 실무자들에게 기관투자자의 참여를 높여 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은 삼성이 조심스럽게 개인 투자자들의 입찰 참여를 원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에버랜드의 절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서 장학재단이 매각하는 지분 4.25%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의 소수 지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인주주가 다수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삼성 입장에서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입장에 대해 주관사인 동양증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에버랜드에 관심을 갖는 다수의 거액자산가들은 상장차익 등에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에버랜드 그 자체의 희소가치에 투자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면서 내심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pisces738@yna.co.kr

yuja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