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연락처 dollar@kita.net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은 어느 날 식당에 앉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으로 가득 찬 식당에는 웨이터들이 정신없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들은 주문한 음식을 정확히 테이블로 가져왔다. 따지고 보면 신기할 것도 없었으나 심리학자인 그녀는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그래서 웨이터가 음식을 가져오자, 바로 직전 테이블에 갖다 준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웨이터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당황하는 것이었다! 방금 날라준 음식이 무엇인지 모르다니! 그러면서 어떻게 수많은 손님의 주문에 헷갈리지 않을까? 의문에 사로잡힌 그녀는 이 문제를 놓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인간심리에서 중요한 특징 하나를 발견한다. 인간은 완결되지 않은 일은 기억회로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되뇌기 때문에 쉽게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작업이 끝나 더 있어보았자 소용이 없는 일은 깨끗하게 기억회로에서 사라지고 만다. 웨이터가 기억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였다! 이 원리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자이가르닉 효과’로 불린다.

컴퓨터 메모리가 16G나 32G이듯 우리의 뇌도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것을 다 담아놓을 수 없는지라 빨리빨리 쓸데없는 기억은 지워야한다. 그래야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자이가르닉 효과에서 알 수 있듯이 기억에서 없애려면 ‘완결’을 지어야한다. 자신의 뇌 속에서 스스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잊으려 노력하여도 도무지 잊히지 않는다.

끔찍한 재난이나 교통사고 등과 같이 큰 사고를 겪은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호소하는 후유증에 ‘외상후 스트레스 징후군’이 있다. 사고를 당했을 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악몽 속에서 오랫동안 반복되는 증상이다. 심리학자들은 충격이 너무 컸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완결되지 않아 기억회로에서 계속 반복되고 또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난주에 달러-원 환율은 거의 ‘참사’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환율이 좀 하락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설마 1,050원이야 지켜지리라 기대하였던 나부터 머쓱해졌고, 그뿐만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했던 시장에 가해진 충격도 컸다. 물론 당국도 나름 할 말은 있겠지만 어쨌거나 놀라운 일이었다.

딜러들이 이럴 때 흔히들 “지난 일은 지난 일일 따름(Let bygones, be bygones.)”이라고 말한다. 옳다. 지난 일은 잊고, 새롭게 시작하여야 한다. 그런데... 글쎄다. 과연 가능할까? 환율이 1,030원대로 추락한 일을 마음속에서 ‘완결’하고 새로운 한 주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기억회로에서 뱅뱅 돌며 내내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달러-원 주간전망)

무역수지 흑자지속, 외국인 주식투자자 순매수, 미국 조기 금리인상 우려 완화, 우크라이나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축소, 중국 금융시장 불안 진정... 달러-원 환율이 지난주에 하락하게 된 원인을 꼽아본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다 지난 후에 결과를 놓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하기는 쉽다. 그러나 사전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란 매우 어렵다. 기본적 분석이건 기술적 분석이건 마찬가지이다.

물론 달러-원 환율의 추세는 분명히 하락세이다. 내가 즐겨 보는 일목균형표에 의하더라도 달러-원은 구름을 무너뜨리고 훌쩍 아래로 내려섰고 기준선, 전환선 등은 물론이고 후행스팬을 포함하여 모든 괘선이 하락추세를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반등에 미련을 가졌던 것은 ‘1,050원’이라는 레벨, 그리고 그동안 달러-원의 하락폭이 컸기에 하다못해 자율적 반등이라도 나타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고, 시장은 ‘외상후 스트레스징후군’ 수준의 충격을 받았다. 앞서 지적하였듯 이 충격은 꽤 오래갈 것으로 우려된다.

차트로는 새로울 것도 없다. 하락세인 것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일부 보조지표들 - 예컨대 RSI, CCI 등이 ‘과매도(oversold)’를 말하고 있으나 그것을 믿고 반등을 주장하기란 성급하다. 추세는 종종 연장되는 법. 보조지표가 바닥권이라고 하여 시장이 즉각 반등하지는 않는다. 시장이 스스로 돌아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추세가 이처럼 강력할 때에는(이미 지난주에 경험하였듯) 특정한 레벨을 ‘바닥’으로 예단하기는 위험하다.

차트는 의당 ‘매도’를 외친다. 이 와중에 ‘롱’을 쥔 딜러들이 믿는 구석은 당국의 개입과 바닥권에 이른 보조지표인데, 그것들이야 시장의 협조가 없이는 스스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니 큰 힘이 되기는 어렵다. 특히 1,050원이나 1,040원처럼 나름 시장에서 의미가 있었던 지지선이 무참히도 무너진 판국에 무얼 더 바랄까!

대세는 넘어갔고, 남아 있는 것은 약간의 반등 기대일 따름. 그나마 반등이라도 나타날 때에 얼른 포지션을 없애고 ‘숏’ 대열에 동참하는 것이 현명할 상 싶다. 1,030원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시장이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기 전에는 그저 추세에 동참하는 것이 정답이다.

(코스피지수 주간전망)

닥터 둠으로 불리는 마크 파버(Marc Faber)는 지난주 CNBC에 출연하여 미국의 주가가 조만간 30~40% 폭락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비관론자답다. 그는 금융위기 때보다도 주가 하락폭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무섭다. 으스스하다. 하지만 매번 느끼는 불만이로되 그는 “폭락할 것”이라고만 말하지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제한된 방송시간 때문일지 모르나 나는 그의 발언을 들을 때마다 혹시그가 한 쪽 방향으로 그냥 ‘찔러보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

비관론적으로 말한다면야 코스피지수의 경우도 그렇게 보인다. 지난주 코스피지수는 위로 2,000선의 저항에 막히고 아래로는 1,970~1,980선의 지지를 받으면서 좁은 박스권 행보를 이어갔다. 그런데 잘 보면 2,000 근처에 갈 때마다 차트에는 독특한 패턴, 즉 고점을 의미하는 캔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4월3일에 장중 2,007까지 올랐을 때에는 캔들에 위로 긴 수염이 나타났고, 4월10일 역시 장중 2,007에 닿았던 날에는 시가-종가가 엇비슷한 도지(doji)가 나타났다. 더구나 이틀 모두 장중고점이 2,007이었고 종가로 유지되지 못하였다. 고점이 연이어 나타나는 현상 - 이중천정형(double top)을 의심할만한 대목이다.

의심하려면 한이 없다. 주가와 보조지표 사이에도 간극이 엿보인다. 코스피지수는 고점을 경신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데, RSI나 CCI 등과 같은 보조지표는 고점이 되레 낮아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기술적분석 교과서에서 추세전환의 결정적인 계기로 설명하는 다이버전스(괴리, divergence)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아직 힌트 혹은 조짐일 뿐 확증은 되지 못한다. 이중천정형이 되려면 중간의 저점인 1,977 이하로 주가가 내려서야 하고, 더 확실하려면 일목균형표 기준선이 버티는 1,961도 지나야 한다. 아울러 다이버전스 역시 주가가 확연하게 밀리는 양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현재 지나고 있는 구름이 얇아서 변화가 나타날만한 시기이지만 아직 비관론을 예단하기는 이르다. 마크 파버는 입만 열면 비관론이나 나는 요즘 들어 조심스럽다. 여전히 차트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쎄, 약간의 조정이야 가능할 수는 있겠다. 구름이 무너지고, 후행스팬마저 역전된 다음에야 하락을 말할 수 있으나 아직은 ‘소폭조정’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연합인포맥스)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