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신기할 따름이다. 오래전 민주화시절부터 사회적 문제의식에 각성한 수많은 대학생이 관료 공무원, 국회의원, 이익단체, 학자, 언론으로 대거 진출했고, 많은 지식인들이 매 주일 교회와 사찰에서 예배를 보고 불공을 드리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정의와 도덕의 질과 양은 증가하는 것 같지가 않다. 왜 그럴까.

이들 역시 사회생활하면서 각자 모두가 속한 집단의 이익과 사익(私益)을 챙기는 대오에 편승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컨대 공무원이 되면 관료 선후배뿐만 아니라 조직 외부의 이해관계자와 고객집단까지 포함하는 커뮤니티 집단에 집중했다.

각종 인허가, 규제, 권한을 독점하고, '왕따'가 되지 않으려면 민간에 우월적 지위를 통해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고리에 몸을 묶어야한다. 그래야 100세 시대에 퇴직 이후 유관기관.기업에 전관예우형 재취업이라도 가능해진다.

국회의원, 이익단체, 학계, 언론 종사자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자신의 밥그릇 지키기에 열중하기는 마찬가지다. 공동체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와 사익에 복무했다. 이들은 결국 국가적 대형 재난사고의 주역이며, 책임과 의무는 방기한 채 기업과 국민에 기생하는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이들 대부분은 실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해관계에 엮이고, 다른 이와 갈등 상황에 놓이면, 결국 자기 욕심과 자기 편한 곳만을 따라갔다. 우리 사회에 말과 겉모습만 인격자인 척, 깨달은 척하지만 속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이들이 득실대고, 남 탓만 난무하는 분위기가 된 이유는 이들이 '돈'과 '밥줄'과 '권력'이라는 쇠사슬을 끊고 나오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들이 학창시절 공부했던 정의와 도덕, 그리고 사회생활 하면서 성현의 고담준론(高談峻論)에 대해 감동 받은 만큼 사회 실생활에서 '실천'하지 않거나 못한 데 있다.

작고한 함석헌 선생은 이런 집단적 현실 모순을 끊어버리는 해결 방안을 이렇게 제시했다. 그러나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너 자신을 혁명하라.'

실천 없는 자기 명상은 결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지 못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함 선생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주기를 바라지 말고, 자신부터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 즉 '자기혁명'을 실천하라고 했다.

성현의 훌륭한 지혜의 글과 말씀을, 현실생활에서 뒤처지지 않을 만큼만 자기 인격을 적당히 위장하고, 고상한 사람인 척하려는 수단적 가치로만 삼지 말고, 깨달았을 때의 그 감동과 가슴 떨림 그대로 '실천'하는 용기를 내라고 했다.

이렇게 자기 혁명을 실천하려는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자연스러운 힘이 형성될 때 사회도 진정한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의 개체적 욕심과 이기심을 극복해 전체성으로 향하는 것이 '자기 혁명'의 지향점이다.

공동체 구성원 전체 각자가 '모든 것이 내 탓'이며, 각자 '자신으로부터의 혁명'이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는 희망은 접는게 좋다는 경고였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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