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종혁 백웅기 기자 = 법정자본금 규모를 15조원으로 몸집을 불린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이 '덩칫값'을 제대로 할지 주목된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관련 금융지원 계획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본금을 늘렸던 명분이 다소 희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한국전력공사 컨소시엄이 수주한 UAE 원전건설 프로젝트에 수은이 100억달러를 지원하려던 계획이 무위에 그칠 공산이 크다.

건설과 금융지원 내용이 포함된 기존계약과 관련 UAE측이 자력으로자금을 전액 조달하거나 적어도 자체 조달금액을 대폭 늘리겠다는 뜻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은은 이미 2012년 11월 UAE 바라카 원전 건설운영사업 특수목적회사(SPC)와의 금융계약에 대한 내부승인을 마치고도, UAE 아부다비 정부의 국무회의 심의·의결이 미뤄지면서 구속력 있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비싼 자금의 사용을 꺼린 UAE가 최종적으로 수은의 금융지원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국가적으론 재정 부담없이 '원전 수출'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셈이다. 다만, 작년말 여야가 수은의 법정자본금을 8조원에서 15조원까지 늘리는 내용의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처리했던 빛이 바래는 상황이다.

UAE는 국제신용등급이 무디스의 경우 'Aa2', 스탠다드앤푸어스(S&P)와 피치가 'AA'로 수은 신용도보다 높다. 수은은 무디스 등급이 'Aa3', 피치가 'AA-'로 한단계 아래이며 S&P는 'A+'로 UAE보다 두 단계 낮다. 이 때문에 애초에 수은의 UAE 원전 금융지원 자체가 조달 비용 측면에서는 모순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제신용등급이 더 높은 UAE로서는 수은의 조달자금을 쓸수록 손해인 셈이다.

이는 새로운 문제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야당 일각에선 원전수출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수은의 자본금 규모를 키워준 만큼, 금융지원 소요가 사라진다면 응분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박원석 의원실은 자본금을 줄이는 내용으로 수은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국가재정으로 금융지원을 하지 않게 된다면 굳이 나쁘다 평가할 건 없지만, 수은 자본금 규모는 그런 사업들을 지원하라고 늘렸던 것이기에 UAE측 입장이 명확해지면 (법 개정 등)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수은법 개정논의 과정에서 자본금 확충 문제는 주요 쟁점사항이 아닌 부차적 문제로 취급됐다. 지분투자 허용 등 파격적인 금융지원안을 들고 나온 여당과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정책금융기능 강화를 주장한 야당이 서로 일부분씩 수용하면서 합의를 이뤘던 터였다.

지난 2012년 11월과 작년 11월에 각각 수은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실과 설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의 설명도 유사하다.

최 의원실 관계자는 "수은법이 70년대에 만들어진 이후 크게 손댄 적이 없어 현재 금융시장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왔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설 의원실 관계자도 "수은법 처리 당시에도 UAE 원전지원은 계획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적다고 봤고, (자본금 증액은) 개정 취지의 핵심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은 관계자는 "UAE 원전의 금융지원 관련해서는 현재 UAE측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며 "UAE의 답변 이후에 조만간 금융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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