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선진국 중에서 요즘 가장 곤혹스러운 나라는 일본일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근간인 엔화약세 정책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미국과 유럽은 통화가치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써서 경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환율을 유도하고 있으나 일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유럽은 '바주카포'라고 불리는 돈풀기 정책을 예고하며 강력한 경기부양 의지를 밝히고 있고, 미국은 돈줄죄기의 충격을 줄여 경기회복의 추세가 깨지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두 강대국과 달리 꾸물거리고 있다. 선진국간의 경제전쟁에서 일본이 밀리는 모양새다. 일본의 이러한 모습은 이웃한 중국과도 대비된다. 중국은 미니부양책을 써서 경제를 살리기에 힘쓰고, 위안화 가치도 절하시켜 수출 경쟁력 회복을 노리고 있다.

현재 일본 정책당국은 아베노믹스의 약발이 식고 있어 고민이지만 추가 대책을 쓰기엔 시기상조라는 점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작년부터 돈 풀기 정책으로 경기회복의 불씨를 살려놨으나 기대했던 것만큼 활활 타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오히려 최근 들어선 아베노믹스의 부작용이 더 드러나고 있다. 무역수지는 2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해 통계작성 이후 최장기간 적자를 기록중이다. 소비세 인상 후폭풍으로 4월 이후에는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우려되고 있다.

환율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도 걱정거리다. 일본이 디플레이션을 벗어나려면 물가를 올려야 하지만, 수입물가가 올라 생필품 가격이 오르는 것과 국내 경기가 회복되고 근로자들의 임금이 오르면서 물가가 오르는 건 다른 얘기다. 기업의 실적 개선이 임금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는 일본 경제의 물가상승은 절름발이 현상에 불과하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일본의 속내는 불편하다. 그런 불편함은 최근 외환당국자들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외신에 유럽의 환율정책을 비판하는 말을 흘렸다. 일본의 엔저정책을 비판했던 유럽이 유로화 절하를 유도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남의 탓만 하게 된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주말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엔화절상은 합당하지 않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강한 개입없이 외환당국의 발언만으로 엔화 상승을 막기 어렵다는 게 글로벌 외환시장의 평가다.

일본이 경제회복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돈을 더 풀어서 경기를 자극하고 엔화의 하락을 유도하는 양적완화 정책의 확대다. 일본은 현재 추가 대책을 저울질하고는 있으나 주변 상황이 만만치 않다. 일본이 돈을 풀면 중국과 한국 등 주변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보기 때문이다. 돈 풀기 정책이 경제활성화에 기여했는지 일본 경제의 성적표를 보면 장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런 탓인지 돈 풀기 정책을 주도하는 일본은행(BOJ)은 최근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돈을 더 풀어 경제가 회복되고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면 모르겠으나, 행여 아베노믹스가 실패로 끝나게 된다면 주변 정세가 복잡하게 꼬일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특히 아베노믹스의 실패가 동북아시아에 위협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을 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회복을 기치로 탄생한 아베 정권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다른 쪽에서 인기를 만회할 전략을 찾을텐데 그 대안으로 외부와의 갈등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치ㆍ외교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갈등, 군사적으로 북한과 일본의 갈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국제금융시장에도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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