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울 한복판인 북촌(北村)에 25년을 넘게 살다 보니 지인들은 만날 때마다 이 동네에 대한 집값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다. 역사문화미관지역으로 지정된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소재한 이 지역은 백악산과 응봉산이 연결된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남산이 내다보여 명당 중의 명당이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평당 700만원 선에 거래되다가 2002년 전후로 매년 10% 이상 올랐고 강남 부호들이 한옥 투자 바람이 거셌던 2007년에는 2002년에 비해 두 배 넘게 뛰었다. 이후 금융위기 이후 오름세가 꺾였고, 요즘은 거래가 없이 시세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그러면 앞으로 이곳은 어떻게 될 것이냐. 투자대상으로서의 매력은 주춤거릴 게 불가피하다. 각종 개발은 억제한 채 한옥 원형 보존을 위한 각종 대책만 나와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건립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요 측면에서는 꾸준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서울 도심에 있는 전원주택 성격을 띠어 한적하고 조용한 삶을 선호하는 이들의 수요는 유지된다. 최근에는 주거 주계층인 노년층이 생활여건이 좋은 경기도 일대로 빠져나가고 그 빈자리를 전통적인 삶에 매료된 30~40대가 채우고 있다. 강남 자산가들이 두 번째 집으로 사용하고, 아이들과 함께 정서적인 안정을 느끼고 싶은 이들은 주거용으로도 사용한다. 역사·문화적 가치에 관심이 높아지고. '스토리'가 있는 지역을 선호하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공방을 운영하고, 화랑도 늘고 있다. 외국인이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종로·중구 일대 숙박업소를 선호하자 이곳에 한옥 게스트하우스나 상가를 운영하려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긴 법. 최근에 이 동네는 관광객과 산책객이 몰려 오면서 카페와 커피숍, 레스토랑과 옷가게 등이 급증하고 고즈넉한 골목과 동네가 북적거리는 탐욕과 욕망이 넘실거리는 상업 관광지로 변하고 있다.

미국의 제인 제이콥스(1916~2006)는 20세기 중반 거대도시 뉴욕의 이야기 '대도시에서의 죽음과 삶'라는 책을 쓰면서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작은 집, 꾸불꾸불한 골목, 상점, 목욕탕, 뛰노는 아이들, 오가는 어른들, 이들이 다양성과 활기를 만들고 낸다고 설파했다. 이를 기반으로 신뢰, 네트워크, 사회참여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쌓이고,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이 생태계가 도시의 범죄를 막아주고 안전을 지켜주는 소위 '길 위의 눈(eyes on the street)’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서울의 도시설계와 도시사회학이 이런 사상의 영향 등으로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단순하고 진지함이 없는, 돋보기로 들여다볼 만한 구석이 존재하지 않는, 탐욕만 앞세운 하드웨어만 앞세운 사업 추진이 빈번하다.

빠름과 성장, 빌딩의 높이에 압도당한 이들이 지친 일상을 치유하고, 여유 있는 시선과 느림의 미학, 기다림을 즐기려고 주말마다 북촌 골목으로 몰려들지만, 이들이 살아있는 삶의 공간을 구경하고 돌아가는 일이 차츰 어렵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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