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대통령의 물가에 대한 걱정은 말로만 끝날 것 같다. 한국은행이나 정부관료들은 물가 잡는 시늉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에게는 유가라는 대외변수가 부각되면서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최근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사석에서 유가 때문에 물가가 걱정인데 대책이 없느냐는 질문에 "속수무책이다. 기도하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국제유가가 뛰어도 일본이나 미국, 유럽의 선진국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안정돼 있는데, 왜 유독 한국만 심하게 직격탄을 맞을까. 결론은 한은과 경제관료들의 물가관리 실력 부족 탓이다. 특히 물가에 대한 책임의식이 후진국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물가관리의 책임기관 수장인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주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한 자리에서 "물가는 유가 상승 위험이 있지만, 유가가 현재 수준이면 물가목표치(3.3%)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두바이유가가 123.38달러로 올라섰다. 최근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한 민간 참석자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면 유가가 200달러로 폭등할 가능성을 제기한 상황에서, 김 총재의 발언은 앞으로 유가가 계속 오르면 '거봐, 물가 오른다고 했잖아'라는 식의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로 나올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 같다.

생산자물가는 반년 만에 상승폭이 커졌다.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 2월 생산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5% 올랐다. 1월 상승률은 3.4%였다. 지난해 8월(6.6%) 이후 계속 오름세가 둔화하다 6개월 만에 다시 확대된 것이다.

물가상승은 고소득층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서민과 저소득층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작년 저소득층 가구의 엥겔계수가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지출 중 식료품과 비주류음료가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계수는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저소득층은 소비지출의 절대규모가 작아서 생활물가가 오르면 엥겔계수도 큰 폭으로 오른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엥겔계수는 20.7%로 2005년 이후 가장 높았다. 상위 20%인 5분위가 11.83%였다. 1분위의 엥겔계수가 5분위보다 2배가량 높은 것은 저소득층의 먹거리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고소득층보다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전체 가구의 엥겔계수 역시 작년 14.18%로 2005년(14.61%) 이후 최고치다. 기본적인 의식주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커진 것은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생활에도 이미 주름이 가게 하고 있다.

물가상승은 중산층의 몰락과 양극화의 심화를 촉진한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생필품 가격이 오르면 먹고살기가 빡빡해진다. 악화된 엥겔-지니계수는 서민들 절망의 폭이 그만큼 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의 계절에 이들의 분노가 어떻게 나타날지 지켜볼 일만 남아있는 것 같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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