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달 27일 끝난 유럽 선거에서 주목할 현상이 나타났다. 유럽통합을 반대하는 극우파 성향의 정당들이 대거 약진한 것이다. 프랑스·영국 등 선진국에서 반 유럽연합(EU)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했고 독일에서도 유로화 사용을 반대하는 정당이 의회에 입성했다. 유럽통합은 1992년 깃발을 꽂은 후 20여 년 만에 급제동이 걸린 셈이다.

정치는 민심을 반영하고 민심은 경제에 투영된다. 극우파의 득세는 장기 경제불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고실업과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여론이 표심에 반영됐고 극우파들이 그 과실을 따 먹었다는 얘기다. 유럽은 경기가 극심한 침체를 겪던 1930년대에도 나치를 중심으로 파시스트들이 득세한 적이 있다. 먹고 살기 어려워 피폐해진 국민정서를 극우파들이 교묘히 이용해 정권을 잡은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눈에 띄는 건 독일에서 신나치 성향의 정당이 유럽의회에 둥지를 틀었다는 점이다. 경제가 극심하게 악화하면 갈등을 외부로 표출하는 극우파들의 지지율이 높아진다는 명제가 재확인됐다.

이런 흐름은 유럽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경제측면에선 단일통화 유로화와 경제통합과 관련한 정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 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탄생한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 행보도 영향권에 있다.

ECB는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5일 예정된 통화정책 회의에서 금리를 내리거나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가능성이 크다. 극우정당들이 ECB를 보는 시각이 양면적이어서 ECB 정책에 어떤 평가를 내릴지 주목된다. EU 체제의 산물인 ECB의 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표출할 가능성이 있으나, 경기부양이라는 현실론 앞에서 극우정당이 ECB의 부양책을 반대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경제살리기가 최우선이라면 ECB는 부양책이 시급하다. 유로화 환율이 고공행진을 펼치고 유럽의 각종 경제지표는 밑으로 꺾이고 있어서다. 미국은 2008년 터진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세 차례나 달러를 풀었고 일본은 경쟁국에 뒤처진 경제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2013년부터 엔화를 풀었다. 이제 유럽도 그 카드를 만질 때가 된 셈이다. ECB의 기준금리는 현재 0.25%다. 이번 회의에서 0.10%P 금리를 낮춘다면 다음 번에는 돈을 찍어내는 양적완화를 써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유로화 가치를 끌어내리겠다는 의지를 정책당국자들이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 환율을 잡아야 유럽국가들의 수출경쟁력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과 일본의 돈 풀기 정책이 과연 실물경제를 부양하는데 효과가 있었느냐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의 돈풀기는 주식시장을 살렸지 실물경제를 살리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美ㆍ日 경제 주체들이 주식시장에서 번 돈으로 소비를 늘려 실물경제가 살아나는 자산효과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율 효과로 수출기업들이 돈을 벌면 임금을 올려 소비가 활성화되는 선순환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미국의 최대 이슈는 최저임금 상승이고, 일본은 봉급자들의 임금 인상이다.(일본은 1997년 이후 평균임금이 15%나 낮아졌다.) 미국과 일본의 선례는 유럽에게 반면교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의 뒤를 이어 유럽이 돈을 풀더라도 헤쳐가야 할 길이 많다는 의미다. 돈 풀기 이후 출구전략에 어려움을 겪는 미국과 경제회복에 불이 붙지 않아 고심하는 일본의 모습도 유럽이 봐야할 미래의 고민거리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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