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준기 회장. 20대의 젊은 나이에 사업을 일으켜 공격적 경영을 통해 동부그룹을 재계 18위의 대기업그룹으로 일궈낸 몇 안되는 창업 경영자로서 존경 받아왔다.

그러던 그와 동부그룹이 총체적 난관에 봉착하자 재계에선 웅진이나 STX, 동양 사태보다 파장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의 '동부사태'를 두고 제계의 한 관계자는 "구력이 수십년된 싱글 핸디캡 골퍼가 트리플보기를 범한 듯한 인상을 준다"고 빗대 표현하기도 했다.

그간 보여준 탄탄한 경영능력과 입지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의 '미스샷'으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동부사태를 경영진의 무능이나 과욕으로만 몰아가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주장도 한다.

동부 채권단이 서둘러 이 사태를 마무리하려고 무리하게 김준기 회장과 동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의견도 일견 일리있어 보인다.

앞서 대기업그룹 여러 곳이 잇따라 무너진 것에 트라우마가 생긴 정부와 채권단이 동부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려고 조급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던지는 심정으로 지난해 3조원에 달하는 자구계획안을 내놨다.

애지중지 하면 키워온 동부하이텍은 물론, 그룹의 핵심 기업인 동부제철의 인천공장까지 팔겠다고 했다. 알짜 기업인 동부발전당진은 물론이다.

하지만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에 팔겠다고 하면서 뭔가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동부는 중국 철강업체들이 인천공장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패키지 매각을 꾸준히 반대해 왔다. 결국 포스코는 패키지 인수를 포기했고 동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여기에 오너 일가의 경영책임을 묻는 듯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이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내놓으라는 채권단의 거센 압박이 결국 동부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김준기 회장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김 회장의 입장이 동부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약속한 사재출연 자체를 거부하는 것인지 알길은 없다. 하지만 현재의 위중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 회장 역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일가 역시 가능한 모든 것을 보태야 한다.

'최선'이라는 말은 단순히 노력만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자신이 됐건 아들이 됐건 과욕을 버리고 국가와 사회의 공공재이기도 한 기업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신용보증기금이 동부제철의 회사채 차환 지원에 동의하면서 채권단 주도의 자율협약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꾀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동부의 앞날을 낙관할 순 없다. 과거 자율협약을 통해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한 기업들의 사례에서 보듯 경영권을 둘러싼 동부와 채권단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경영정상화라는 목표는 같을 지언정 채권단은 김 회장 일가의 금융계열사 지분을 또 다시 요구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김 회장과 그 일가가 경영권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는 것이다.

김 회장과 일가는 초심으로 돌아가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다"는 처음 슬로건처럼 희생하고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채권단과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동부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채권단과 정부도 갈등을 조장하는 이해 못할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칠 충격이 적지 않아서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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