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싫으면 나가라"

덩치 큰 자산운용사를 인수한 뒤 새로 부임한 A자산운용사 사장은 직원과의 첫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로 이 말을 건넸다.

최근 이뤄진 구조조정과 전환배치에 불만을 품은 직원들에게 건넨 일종의 경고 메시지였다.

부임 전 대리급까지 평판체크를 마친 이 사장은 40세 이하로 비교적 평가가 좋았던 직원은 증권쪽으로 전환배치했다. 나머지 이 마저도 되지 않는 사람은 업무지원팀으로 발령을 내 퇴직을 종용했다.

이 과정에서 업계 상위권 자산운용사 직원이라는 자존심은 뭉개질대로 뭉개졌다.

한 직원은 "보통은 직원을 끌어안고 조직을 안정시킨 뒤 구조조정 등으로 재정비하는데, 오자마자 싫으면 나가라는 얘기를 듣고, 직원은 도구에 불과하구나는 생각을 했다"며 "인사는 사장이 결정하고 경영팀은 처리만 하라는 지시를 듣고 더이상 불만을 얘기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뒤늦게 구조조정에 뛰어든 B 증권사는 말로만 희망 퇴직, 실질적으로는 강압 퇴직을 해 직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직원 3분의 1 가량을 줄인 계획인 B 증권사는 경영진이 "왕따 시키면 한 달도 못 버틴다. 노조도 의미 없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구조조정 당시 비참했던 책상만 남겨놓고 일을 주지 않았던 사례를 들며 퇴사를 종용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흔해져버린 여의도의 풍경이다.

비자발적 퇴사인 만큼 노사간의 갈등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해도, 직원들의 내치기가 너무 과도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희망 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좋은 조건을 내걸고, 퇴로를 만들어주자는 좋은 의도라고 회사측은 설명하지만, 궁지에 몰린 직원들은 선택의 범위가 많지 않다.

비교적 빨리 구조조정을 한 회사 직원은 나와도 재취업의 기회가 있었지만, 현재는 업계 전체가 구조조정을 하는 만큼 다시 동종 업계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구조조정 계획과 함께 블랙리스트가 돌고, 버틴 직원들에게 회사들은 외부방문판매(ODS) 조직으로 발령을 내 버틸 수 어렵게 만든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상자를 찍어놓고, 그 대상자에게 압박하는 면담을 보면 인간적인 회의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산업증권부 곽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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