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역시 정치적 수사 보다 경제지표에 근거해 말하려는 조사통이었다. 이 총재는지난 14일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25bp 인하한 8월 금융통화위원회 결과를 설명하면서도 마음에 없는 빈말을 못하는 전형적인 한은맨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총재의 돌직구성 시그널에 기준금리 인하에도 채권금리가 오르고 달러-원 환율이 급락하는 등 서울 채권시장과 외환시장 등은당황했다.

이 총재는 이날 회견에서 "이번에는 경제주체들의 장기화된 심리 위축이 경기 하방 리스크를 확대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했다. 물가 압력 부담이 낮은 점도 고려했다. 앞으로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지켜보면서 경제주체들의 심리 변화, 가계부채 영향 등을 고려해대응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채권 및 외환시장은 '앞으로 인하효과에 따른경제주체들의 심리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이 총재의 발언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시장은 당초 이 총재가 추가 인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번 인하는 이달 기준금리를 결정한 것으로 다음달 기준금리는 다음달 금통위에서 결정할 사안이다'고 원론적으로 발언할 것으로 점쳤다. 이 총재 스스로 다음 행보를 제약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달 필요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수사적이고 정무적일 수도 있는 이런 표현을 최대한 자제했다. 오히려 6월에 이어 7월에 기존 입장을 바꾼 배경을 담백하게 시장에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시장은 이 총재가 시그널링 효과를 충분히 줬다는 점을 높이사면서도 금리인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는 표현을 너무 자주 사용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기준금리 인하의 배경 가운데 하나가 경제주체의 심리 호전이라면 모호한 표현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하지 않더라고 시장의 기대만으로도 충분한 정책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동안 서울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은 인하 기대를 바탕으로 금리 빅랠리를 펼쳤고 달러원 방향성도 바꿨다.

빈말 못하는 이주열총재는 시장과 수싸움을 즐기고 정책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차원에서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장의 '건설적 모호성'(constructive ambiguity)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건설적 모호성' 화법을 통해 듣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시장의 쏠림을 막는 효과를 극대화했다.

블랙먼데이 발생한 1987년부터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까지 미국 연준을 이끌어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얻은 그린스펀은 과거 미 의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한 의원이 "(당신이)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잘 알겠다”고 말하자 "당신이 내 말을 이해했다면,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스펀이 금융시장과 수싸움을 들인 공을 설명하기 위해지금도 거론되는 일화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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