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금융감독원이 석달여를 끌어온 끝에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경징계를 내리면서 KB금융 경쟁력만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리한 법적용으로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중징계를 사전 통보하며 KB금융을 사실상 최고경영자(CEO) 공백 상태에 빠뜨린 데다, 사전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은 회피한 채 오로지 '보여주기식' 금융사 징계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6월9일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문책 경고'의 중징계를 사전 통보했다.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와 내부통제 부실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금감원은 통보 후 두 달 반 동안 제재심의위원회를 여섯 차례나 연 끝에 이날 징계 수위를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로 수정했다.

금감원이 석 달 가까이 제재 수위를 결정하지 못하며 KB금융의 경영공백은 커졌다. 실제로 KB금융그룹 계열사 가운데 KB생명과 KB금융투자, KB자산운용, KB부동산식탁, KB신용정보 등 5곳의 대표 임명이 연기됐다.

국민은행 임직원 100여명에 대한 징계도 함께 지연되며 영업력이 위축됐다. 이들 임직원은 일본 도쿄(東京)지점 부당대출과 국민주택채권 횡령, 개인정보 유출, 전산 교체 관련 내분 등으로 징계를 통보받으며 영업보다 징계 수위 낮추기에 몰두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 예금 점유율은 지난해 말의 20.9%에서 지난 6월 말 20.5%로 하락했다. 대출 점유율 역시 같은 기간 19.6%에서 19.4%로 낮아졌다.

금감원은 소명 절차가 길어져서 징계 수위를 확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애초에 무리한 법적용으로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중징계를 사전 통보한 후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자 금감원이 우왕좌왕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동양사태와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건으로 금감원의 사전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KB금융에 보여주기식 중징계 통보를 한 것 아니겠느냐"며 "감사원으로부터 무리한 법적용이라는 지적을 받자 중징계를 내릴 경우 발생할 파장과 경징계로 선회할 경우 일어날 비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것이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금감원의 중징계 사전 통보와 징계 지연으로 KB금융과 국민은행 내부에서 균열이 발생했다는 데 있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주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내분과 금감원 징계 절차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국민은행 노동조합은 임 회장과 이 행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KB금융과 국민은행 내부에서는 앞으로 금감원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제재 과정에 감사원이 개입한 것을 두고 금감원이 로비 가능성을 의심하며 KB금융에 '미운 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금감원으로서는 지금까지 훼손된 KB금융의 경쟁력은 물론 앞으로 발생할 경쟁력 저하에 대해서도 책임을 피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데 석달여의 시간이 소요된 것을 금융권과 국민에게 납득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제재 수위 결정이 연기되며 KB금융 경영에 차질을 빚은 것 역시 책임으로 돌아갈 것이다"고 지적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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