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전업투자자 A씨는 잘나가는 스캘퍼(scalper. 초단타매매자)였다.

그가 속한 부티크(boutique)에서는 ELW(주식워런트증권) 단타거래 '에이스'로 통했다. 회사에서는 그의 능력에 맞게 대표이사 다음으로 많은 수준의 투자금을 맡겼다. 조그맣게 음식점도 차렸고 고급 승용차도 몰 만큼 여유도 생겼다.

2년 전 증권업계에 발을 들일 때까지만해도 그는 금융투자 관련 전문 지식이 전혀 없었다. 투자 경험도 전무했다.

그는 당시 20~30명 수준의 부티크에서 처음 파생상품을 접했다. 사무실은 지방 소도시의 상가 건물에 있었다.

A씨는 동료들과 장 시작부터 마감까지 자리를 지키며 ELW를 전문적으로 거래했다. 점심은 컵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그런 A씨가 수습사원으로 입사한 직후 받은 초기자금 100만원을 ELW에 투자해 두 달여만에 100%의 수익을 올렸다. 200만원이 됐다.

회사는 여기에 300만원을 더 얹혀줬다. 500만원으로 그는 다시 ELW 거래를 했다.

같은 기간에 그는 500만원을 1천만원으로 만들어놨다. 그리고 그 회사 정직원이 됐다.

넉달만에 100만원을 1천만원 이상으로 불렸다. 수익률 1천% 육박. 그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동료들 중 이 조직에서 '살아난' 사람은 A씨가 유일했다.

전문 투기꾼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후 A씨는 하루에 많게는 수천만원씩 호주머니에 수익을 챙겼다. 회사에 수익의 일정 비율만 떼어주면 나머지 수익은 전부 A씨 것이 됐다.

그러던 그가 다시 선물옵션 공부 삼매경에 빠졌다.

그가 다니던 회사가 금융당국의 규제책 발표와 맞물려 사실상 와해됐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일하던 대부분 인력은 은행과 보험 등 금융기관 영업직원으로 제 살길을 찾아 흩어졌다. A씨는 다른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부티크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며 재기를 꿈꾸고 있다.

금융당국이 개미 투자자를 울리는 ELW 시장의 무법자들을 내치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빼든 칼은 시장에 먹혀들고 있는 듯하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LP(유동성공급자)의 호가 제출을 제한하는 규제안을 시행한 첫날인 지난 12일 ELW 거래대금은 전일의 7% 수준으로 급감했다.

대부분 증권사는 신규 ELW 종목 발행을 사실상 중단했다.

ELW 상품의 메커니즘이 복잡하고 위험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위험도 높은 상품에 투자하겠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투자자 선택의 문제다.

그런데 당국의 이번 투자자들의 투자 선호도를 배제한 '칼부림'이 시장 자체를 사장(死藏)시켜버리는 꼴이 됐다.

커다란 시스템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작은 것들에 치우친 대책으로 ELW 시장을 투자자 없는 '빈 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몰리는 법. A씨는 ELW 시장을 나와 또다른 시장을 전전하고 있다. (한재영 기자)

jy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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