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경영진의 책임을 줄이고 권한을 강화하는 정관 변경이 지난 16일에 이어 오는 23일 이른바 '슈퍼 주총데이'에서도 최대 관심사항이 될 전망이다.

현대차와 대한항공 등 대부분 기업은 내달 15일 개정 상법 발효를 앞두고 대표이사에게 사채발행 권한을 위임하면서 이사의 책임한도를 축소하는 등의 정관을 변경했으나, 포스코와 일동제약 등 일부는 주주의 반발로 무산됐다.

개정 상법은 주주 권리 보호와 함께 경영활동에 따른 책임을 낮추고 기업의 자금조달을 효율화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그러나 일부 주주들은 이사 책임한도 축소가 책임경영에, 대표이사·이사회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 주주이익에 각각 반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23일 주총을 개최하는 많은 상장사도 이러한 내용의 정관 변경을 안건에 상정해 놓은 상태다.

23일에는 12월 결산법인 547개 상장사 중 절반가량이 주총을 연다. 따라서 이날이 기업 정관변경의 최대 고비다.

앞서 포스코, 일동제약의 정관 변경이 무산된 만큼 유사한 사례가 더 많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게 증권업계의 진단이다.

SK텔레콤과 롯데쇼핑, GS 등은 이사회가 대표이사에게 사채의 금액·종류를 정해 1년을 초과하지 않는 기간 내에 사채 발행을 위임할 수 있다는 23일 주총 안건에 올렸다.

기아차나 한화, 웅진홀딩스 등은 사채 발행을 위임하는 것 외에 이사 또는 감사의 책임을 그 행위를 한 날 이전 최근 1년간의 보수액의 6배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면제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이사·감사의 책임을 줄이는 것이다.

코스닥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거래소의 중간집계에 따르면 13일까지 정기주총 소집을 공시한 회사 818개사 가운데 39%가 이사의 책임을 줄이고, 28%는 대표이사에 사채 발행을 위임하며 36%는 이사회에 재무제표 승인 및 배당 결정권한을 부여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이처럼 상법 개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정관 변경에 나선 기업들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SKT와 롯데쇼핑은 M&A와 투자 관련한 채권 발행 등 자금조달 활동이 활발한 기업이고 한화의 경우 횡령.배임 사건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바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개정 상법의 취지인 '책임 경영'보다는 '마음대로 경영'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게 일부 투자자들의 진단이다.

LG 등 일부 대기업은 이러한 마찰을 고려해 이사 책임과 권한 관련 정관변경안을 아예 상정하지도 않았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개정 상법의 취지는 이사진이 책임 있게 경영하고 원활한 의사결정을 하라는데 있으나 너무 많은 기업이 정관 변경에 나서고 있어 눈총을 받는 모습"이라며 "일부 실적이 좋지 못했거나 CEO 리스크가 발생했던 기업 주총장에서의 갈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포스코의 정관 변경이 무산된 것은 떨어진 재무안정성에 대한 주주의 불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관 변경뿐만 아니고 거수기 노릇을 하는 사외이사 재선임건에도 해당 기업 실적에 만족하지 못하는 기관투자자들의 반대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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