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작년 12월 초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역할에 대해 "(활동) 폭은 넓어지겠죠"라고 말했다. 다만, "자기 능력껏 하겠죠"라는 단서를 달았다.

당시 이 말은 이재용 부사장의 입지는 강화시켜주되 삼성의 후계자로서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은 계속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그 후 이재용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하며 삼성전자를 대표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그 과정에서 애플과의 관계 회복에 앞장섰고, 불황 속에서도 삼성전자가 좋은 실적 내는 데 일조하는 등 이전보다 존재감은 더 커졌다.

다만, 아직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어울릴만한 성과와 리더십에 보여줬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는게 중론이다.

◇사장 승진한 이재용, 대외활동 강화 = 지난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 사장은 지난 2003년 경영기획팀 상무로 발탁되고 나서 2007년 전무, 2009년 최고운영책임자(COO)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1년 만인 작년 말에는 또다시 사장으로 승진했다. 점점 경영 전면에 나서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이와 함께 삼성의 경영체제도 이 사장 중심으로 개편됐다. 무엇보다 이 사장의 측근들이 그룹 경영의 일선에 배치된 것이다.

실제로 이 사장의 대표적인 측근으로 분류되던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이 작년에 부회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올해는 장충기 사장과 윤순봉 사장 등이 그룹 내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또, 기존에 삼성의 실세이던 이학수, 김인주 고문이 2선으로 후퇴했고, 삼성전자의 투톱 체제를 이끌었던 윤종용, 이윤우 부회장도 모두 일선에서 물러났다. 또, 사장단 대부분도 50대로 세대교체 되면서 '이재용 중심의 젊은 삼성'에 더욱 힘이 실렸다.

이처럼 이 사장 중심의 경영체제로 정비되면서 이 사장의 대외 활동은 눈에 띄게 넓어졌다.

실제로 해외 사업장을 자주 찾아 생산·판매 현황을 직접 챙겼고, 외국의 주요 IT·전자업체 CEO들과도 잇달아 만났다. 또, 연초에는 그룹을 대표해 구본무 LG 회장을 방문했고, 지난 4월과 9월에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잇따라 회동하기도 했다.

지난 8월에는 금융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을 이끌고 직접 길거리로 나가 미소금융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스티브 잡스 추도식에 삼성을 대표해 참석해 팀 쿡 애플 CEO와 단독으로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이 사장은 애플에 대한 부품 공급을 내년까지는 이미 계약된 대로 진행하고, 그 이후에도 최소 2014년까지는 부품을 계속 공급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이후 추도식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애플과의 소송전에 대해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소비자를 위해 페어플레이를 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며 이전과는 다르게 자기 생각도 분명하게 표명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업황 악화 속에서도 선전 = 올 한해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제 위기 여파로 주력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가전 부분의 업황이 크게 악화된데도 비교적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이 사장도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경영 전반에 참여한 만큼 이런 실적 호조에 일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에 IFRS 연결 기준으로 매출 41조2천739억원, 영업이익 4조2천52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동기보다 매출은 2.60% 늘었지만, 영업익은 12.57% 줄어든 것이다.

3분기 수익성은 비록 작년보다는 다소 약화됐지만, 당초 3조원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시장의 예상치는 크게 웃돌았다. 특히, 통신부문은 스마트폰 판매가 전 세계 1위에 오르면서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3분기까지 누계 실적도 매출 117조7천억원, 영업이익은 10조9천500억원을 기록했다. 오는 4분기에는 계절적 특수의 영향으로 실적이 더욱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지금 추세대로라면 연간 목표인 '매출 150조원, 영업이익 15조원'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꾸준히 양호한 실적을 거둔 덕분에 삼성전자의 재무구조도 더욱 안정됐다.

실제로 지난 3분기 부채비율은 50%, 차입금비율은 12%를 기록해, 작년 같은 기간의 55%, 13%보다 더욱 떨어졌다.

또, 삼성전자는 일본과 호주를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2번째로 많은 현금을 보유한 기업(금융업체 제외)에 올랐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말 기준 184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해 아시아 지역의 조사대상 120개 기업 중 중국 이동통신사업자인 차이나모바일(468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현금보유액이 많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사장이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선 첫해인 올해 삼성전자의 실적이 예상보다 좋게 나온 것은 이 사장에도 긍정적인 뉴스"라고 분석했다.

◇뚜렷한 실적 없는 이재용, 경영능력 추가 검증 필요 = 지난 1일 이재용 사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연말 인사의 포인트는 내가 아니다"며 "삼성이 구멍가게도 아니고, 모든 게 순리대로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구멍가게'를 운운한 이 말을 두고 재계에서는 '누구나 인정할만한 성과를 통해 삼성전자를 이끌 후계자임을 입증받겠다'는 의지로 해석했다.

그만큼 재계 관계자들은 이 사장이 경영권을 완전히 승계받으려면 '경영능력'을 제대로 검증받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장의 재계 라이벌로 꼽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지난 2005년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취임한 후 기아차를 흑자경영으로 이끌었다.

특히, 2006년부터 '디자인 경영'을 전면에 내세워 K시리즈(K7·K5)와 R시리즈(쏘렌토R·스포티지R)의 돌풍을 만들어냈다. 정 부회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사장 승진 3년 만인 지난 2009년 8월 부회장에 오를 수 있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경영 일선에서 뛰며 뚜렷한 실적을 만든 정 부회장과 달리 이 사장은 삼성전자 임원이 되고 나서도 사업을 직접 이끌기보다는 주로 CCO(최고고객책임자), COO(최고운영책임자)를 역임하며 경영 지원 업무에 치중했다.

이를 통해 경영 전반을 조율하는 역할을 익힐 수는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을 이을 후계자로 적합한지를 증명할 만한 뚜렷한 성과는 아직 거두지 못한 것이다.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이 사장이 올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되지 않은 것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를 이끌만한 능력을 아직 확실히 검증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대외적인 논란을 줄이기 위해서도 이 사장에 대한 후계자 검증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yuja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