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이례적으로 경제와 금리정책 현안에 대해 속내를 쏟아냈다.

한은 재임기간은 물론 퇴임 이후에도 개인적 소신을 밝히는 걸 조심스러워하던 이 전 총재는 경기 회복세 지원을 위한 최근의 논의가 통화정책에만 매몰돼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초기 "할 말이 없다"는 인사치레가 무색할 정도로 긴 시간을 들여소신을 밝혔다. 소비가 부진한 근원인 소득의 양극화 해결에 대한 논의를 회피한 채 금리를 내리라고만 채근하는 현상이 그만큼 불편했다는 뜻이다.

이 전 총재는 현재의 저물가 등은 투자수요보다 소비수요 부진이 근원이며, 이를 해결하려면 임금 인상 등 분배 개선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노골적 정부 對 소극적 한은…사라진 '핵심'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와 만나 금리 인하를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척하면 척 아니냐"는 대답을 내놨다.

정부가 금리 인하를 원하고 있고, 한은도 이에 동의할 것이란 기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다.

최 부총리가 금리 인하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채권시장 등에서 과연 추가 인하가 타당한 것인지, 금리 인하가 현 상황에 대책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는 설곳을 잃었다.

금리에 대한 논쟁은 결국 금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로 결론을 내지만, 그 과정에서 경제 상황과 문제점 그리고 해결책에 대한 논의가 종합적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의 금리 논의는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한은은 이를 따를 것인지만 남았다.

금리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처럼 정치적으로 형성되는 데는 이주열 한은 총재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이 총재는 통화완화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한 대응책이 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을 간헐적으로 내비치면서도 적극적인 의견 피력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만으로는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거나 "1%대 물가가 2년여 지속하고 있지만 농산물과 국제 에너지 가격의 하락 등 공급 측 요인에 주로 기인한 것이다"고 하는 등 현재의 저물가 등이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이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총재의 언급은 최 부총리의 적극적인 행보에 가려지며 논의에 불을 지피지는 못했다.

◇이성태, 금리 논쟁에 가려진 '핵심'을 보라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이런 시점에서 이분법적 금리 논쟁 뒤편으로 밀려난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재는 "현재 투자수요 측면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투자보다 훨씬 큰 소비수요가 왜 부진 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며 "소비수요가 왜 저조하냐가 중요한데, 결국 생산이 고용과 소득을 거쳐서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저물가 등은 공급보다 수요가 부진한 데 따른 현상이고, 투자수요보다 소비수요 부진이 핵심이라는 진단이다. 또 소비수요는 통화정책보다는 분배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투자는 소비인 동시에 차기 이후 공급 요인이 된다"며 분배 개선 등소비진작 정책 없는 통화완화는 장기적으로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를 확대시키는 등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내놨다.

그는 "과거에 하던 식으로 해서는 소비는 못 건드린다"는 직접적 평가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 총재는 이어 최근 정부나 한은 할 것 없이 핵심적 문제인 '분배'의 개선 방안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고 쓴소리를 내놨다.

그는 "분배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어 국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이해조정 문제로 연결되는 만큼 그런 고민을 잘 안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jw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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