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A 증권사 상품개발팀 과장은 최근 회사로부터 '해외 MBA(경영학 석사) 장학생' 제안을 받았다. 이 제도는 회사가 매년 1명의 직원을 선발, 해당자가 원하는 해외 대학으로 MBA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다. 회사로부터 일정 지원을 받는 만큼, 그간 직원들 사이에서는 선발 과정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이 차장은 회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해외 명문대 MBA 졸업장보다 1년 뒤에 있을 차장 승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B 증권사는 올해 사내 장학생 프로그램을 자의 반 타의 반 없앴다. 직원 한 명당 몇천만원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 부담이었다.

다행히(?) 올해는 지원자도 없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한 해 한두 명의 직원은 내로라하는 해외 유수 대학 BMA를 선택했지만, 올해는 가겠다는 이가 없었다.

C 증권사 과장급 직원은 2년짜리 해외 유학 프로그램을 마치고 최근 복직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회사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희망퇴직이 진행됐고, 다수의 입사 동기가 회사를 떠났다. 그중에는 적잖은 위로금을 받고 퇴직한 뒤 다른 곳으로 이직에 성공한 친구도 있었다.

그는 2년 동안 회사에서 1억원의 장학금을 지원받았다. 유학을 가기 전 회사와 작성한 계약서에 따르면 그는 유학 후 5년간 타사로의 이직이 금지돼 있다. 그는 요즘 해외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해외 MBA를 대하는 증권가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과거에는 가고 싶어 안달이던 증권맨들이 이제는 보내준다고 해도 주저한다. 악화한 업황 탓에 다녀온 다음을 기약할 수 없어서다.

고학력을 선호하는 금융투자업계 성향 탓에 사내 장학생 프로그램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연말 기준 자산운용사는 30.1%, 증권사와 선물사는 15.4%의 경력직이 대학원 졸업자다. 때문에 업무상 필요를 이유로 회사에서 MBA를 보내준다면 증권맨들은 새벽 반 영어학원 등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증권맨들이 이제는 해외 MBA보다는 승진을, 기약없는 미래보단 당장의 현실을 선택하게 됐다.

한 증권사 인사담당 부장은 "과거에는 시카고, 런던, 싱가포르, 홍콩 등지의 MBA가 인기가 좋았지만 이제는 보내줘도 안간다"며 "평균 2~3년을 투자해야 하는데 불투명한 미래가 직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2년 넘는 시간 동안 회사 자리를 비워두는 건 책상을 빼라는 뜻"이라며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사내 장학생 프로그램을 가는 경우 대부분이 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고 승진에서도 순서에 밀릴 수 있어 지금 같은 업황에서는 선택하기 부담스럽다"고 귀띔했다.(산업증권부 정지서 기자)

jsjeo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