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인포맥스) 이성규 기자 = 독일 현지의 전문가들은 남한과 북한이 정치적 통합을 단행하더라도 화폐통합은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경제와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조언했다.

정치적 통합 일정에 맞춰 무작정 화폐통합을 추진했다간 통일한국의 경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장기 불황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다.

지금은 유럽의 부국(富國)으로 자리매김한 독일이지만, 독일도 통일 이후 경제적으론 적지않은 시련을 겪었다.

1990년 통일과 함께 화폐통합을 추진한 독일은 통일 이후 1995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야 했고, 2005년에는 10%가 넘는 실업률로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통일 당시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서독이 동독의 3배 수준이었다. 북한의 경제통계가 정확하지 않다 점은 변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남한의 1인당 GDP가 북한의 40배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급진적 화폐통합은 독일보다 더 큰 경제·금융 혼란을 가져 올 것이 뻔하다.

◇ `1국 2통화'가 대안일까

이 때문에 통일 한국의 화폐통합 형태로는 홍콩·중국식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홍콩과 중국은 정치적 통합을 이뤄냈지만, 각각 기존 화폐인 홍콩달러와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 나라는 하나지만 화폐는 두 개인 `1국 2통화' 체제인 것이다.

1997년 7월1일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17년째 별도의 통화가 사용되고 있다. 당시 중국은 홍콩 반환 이후 50년간 각각의 통화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여하튼 홍콩과 중국은 통합 당시 경제력 격차가 남·북한과 유사할 뿐 아니라 통일 이후 경제 성과도 서독과 동독 사례보다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정치적 통합을 이뤄낸 이후에도 노동이동의 법적 제한, 자본이동의 선별적 허용, 상품교역에서 일정 정도의 관세 부과 등을 통해 경제통합을 단계·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오히려 독일보다 중국과 홍콩이 경제·화폐 통합에 있어서는 인위적이지 않고 시장 자율에 맡긴 것이다.

특히 홍콩·중국식 화폐통합은 홍콩 경제에 더욱 매력적인 선물을 안겼다.

1997년 당시 외환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던 홍콩 기업은 중국과 무역협정을 통해 판로를 확대했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얻었다. 중국의 대형 기업들이 잇따라 홍콩 증시를 통해 상장되면서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10년간 증시는 4배 성장했다.

◇ 화폐통합 시점은 

<사진설명: 연합인포맥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스테판 슈네이더 도이치방크 이코노미스트>

노동시장이 통합되면 화폐통합을 늦춰선 안 된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언어에 장애가 없다면, 노동인구는 상대적으로 돈이 몰리는 곳, 생산적인 경제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이유만으로 화폐통합을 늦추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는 경제적 측면을 넘어 정치적으로 더욱 혼란을 가져 올 수 있다.

알렉스 린드너 할레대학교 경제연구소 박사는 "노동시장과 화폐통합 이후에도 북한 주민들이 기존 거주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하게 하려면 이들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고 남한에 근접한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린드너 박사는 "북한 지역에 공공 인프라를 투자하고, 북한에 투자하는 민간자본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며 "이런 노력으로 독일도 (동독지역에서) 새로운 수출 산업이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통일에 앞서 원화의 신용도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화폐통합시 경제·금융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스테판 슈네이더 도이치방크 이코노미스트는 "통일 전후로 한국 정부는 원화의 신용도를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만들어야 놓아야 한다"며 "특히 담보 자산을 최대한 확보해 해외 투자자들에게 신용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이 통일 당시 서독만큼의 경제적 안정성이 없다는 것은 안다"며 "그러나 (통일)펀드 조성 계획이라든지 크레디트 평가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 놓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이 급진적인 통일 과정을 겪으면서 가장 후회했던 부분이 화폐 통합에 앞서 마르크화의 신용도 확보와 펀드 조성 계획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적 통합 없이 먼저 화폐통합이 이뤄진 사례도 있다. 프랑스와 CFA프랑존(프랑스 식민지 14개국)의 환율동맹이 대표적이다. 이 사례 또한 남북한 화폐통합의 모델로 눈여겨 볼만하지만, 이는 정치적 통합보다 경제·통화 통합을 우선할 때 고려할 대상이다.

s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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