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일통일 산증인' 바그너 前드레스덴 시장
<인터뷰> '독일통일 산증인' 바그너 前드레스덴 시장
  • 한창헌 기자
  • 승인 2014.10.02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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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헤르베르트 바그너 드레스덴 전 시장)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기자 = "1989년 11월9일. 독일 사람 그 누구도 그날 아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통일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구(舊) 동독 평화혁명 25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독일 드레스덴시의 전·현직 당국자들은 한반도 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에 대한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의 통일 역사도 시작은 미약했지만, 한번 불이 붙자 거칠 게 없었다. 1989년 10월 작센주(州) 드레스덴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평화시위는 곧 동독 지역 전체로 확산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데는 평화시위가 시작되고 한달이 채 안 걸렸다. 독일 통일이 완성된 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불과 10개월 뒤였다.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만난 헤르베르트 바그너 박사(드레스덴 전 시장)는 "독일인들도 분단시절 통일을 믿지 않았지만, 실제 통일을 완성하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며 "한반도의 경우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올 것이란 믿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직 드레스덴 수석 부시장인 디르크 힐베르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을 방문하면서 이뤄진 이른바 '드레스덴 선언'은 한반도 통일 준비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됐다"며 "남북한의 통일 과정이 독일보다는 훨씬 어려울 수 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헤르베르트 바그너 박사는 1989년 진행된 평화혁명 과정에서 시민들을 대표해 사회주의 통일당과 평화협상을 전개했던 시민대표 20인그룹의 일원으로 협상을 주도했다. 통일 직후인 1990년 최초 자유 지방선거에서 드레스덴 시장으로 선출, 2001년까지 시장직을 역임하며 드레스덴의 경제 부흥을 이끌었다.

디르크 힐베르트는 경제담당 부시장으로서 드레스덴 제2의 전성기를 주도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번 드레스덴 방한단의 단장을 맡아 동독 평화혁명 25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이끌었다. 힐베르트 부시장은 이날 오후에 열리는 연합인포맥스·국제지역학회 주최 '제1회 통일금융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드레스덴시의 개발사례와 시사점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한다.

 (사진2:디르크 힐베르트 드레스덴 수석부시장)

 다음은 바그너 박사와 힐베르트 부시장과의 일문일답.

--한국에서 동독 평화혁명 25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에서 행사를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힐베르트 부시장)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드레스덴 선언을 하고 나서 한국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고 드레스덴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의 경험을 한국에 와서 직접 말씀드리자는 취지에서 이번 심포지엄을 계획했다. 참석자 중 헤르베르트 바그너 박사는 1989년 평화혁명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하셨던 분으로, 통일 이후에는 11년간 드레스덴 시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드레스덴과 독일 전체에 도전과제가 많았던 시기로, 그 경험을 전해줄 수 있다. 율리치 블룸 전 할레경제연구소장은 통일 경제 부문에서 가장 저명한 학자다. 통일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 조달 문제와 정책 방향 등에 대해 조언을 해줄 것이다.

--독일 통일 전 드레스덴에서 시작된 평화혁명에 대한 내용을 잘 아는 한국인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바그너 박사) 평화혁명은 작은 계기에서 출발했다. 1989년 당시 7천여명의 동독 주민들이 동독을 탈출해 체코 프라하의 서독대사관으로 들어갔다. 그때 요구사항이 서독으로 보내달라는 거였다. 10월7일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시점이어서 동독 정권은 사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이들이 탄 여러 편의 열차가 드레스덴을 통과할 때 주민들이 이 열차를 타거나 보기 위해 드레스덴 중앙역으로 대거 몰렸고 동독 경찰은 무력으로 이들을 막아섰다. 이게 평화혁명의 시발점이 됐다. 역설적으로 평화혁명의 시작은 평화적으로 시작된 게 아니었다. 일주일간 시위가 본격화됐고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다른 지역으로도 평화시위가 확산했다.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진행된 약 한달 간의 평화시위가 바로 평화혁명이다.

--드레스덴 등의 평화혁명이 독일 통일의 불씨가 된 것인가.

▲(바그너 박사)동독 정권의 실수를 동독 주민들이 기회로 잡아서 살린 게 독일 통일의 시발점이 된 거다. 평화혁명의 결과물인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많은 동력을 제공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한달새 공산당 정권의 수뇌부가 3번이나 바뀌었다. 3번째 바뀐 서기장은 통일을 원하지 않았다. 동독을 지키려했지만 돈이 필요했고 결국 서독에서 차관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서독 헬무트 콜 총리를 초대했는데, 콜 총리가 1989년 12월 드레스덴을 방문했다. 동독 주민들은 콜 총리를 연호했고 통일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콜 총리가 통일로 방향을 잡고 내부적으로 국제적으로 통일 작업을 추진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후 1990년 3월 최초 자유선거로 뽑힌 동독 총리와 콜 총리가 협상을 본격화했고 동시에 외교적 협상을 하게 되면서 통일이 이뤄졌다.

--드레스덴을 얘기할 때 '엘베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엘베강의 기적이 가능했던 이유와 배경을 꼽는다면.

▲(힐베르트 부시장) 기본적으로 작센주 정부와 드레스덴시의 협력이 잘 이뤄졌다. 통일 이후 주정부가 드레스덴에 많은 도움을 줬다. 그리고 투자 유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1994년 지멘스사의 투자다. 지멘스는 당시 드레스덴에 반도체 공장을 지었는데, 이것만으로 1천4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다른 협력업체들이 따라서 들어오면서 연관 분야를 포함해 5만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이런 투자 유치의 기반이 된 것은 드레스덴의 꾸준한 연구기술 개발 노력에 있다. 드레스덴은 동독 시절부터 자연과학 기술분야의 인력이 많았다. 통일이 되면서 이런 부분이 더해져 드레스덴은 학문과 이노베이션의 도시가 됐다. 다른 도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갖췄다. 성장하는 도시가 되면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됐고 지금까지도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드레스덴은 이런 점에 더해 풍부한 문화유산을 갖춘 도시다.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드레스덴의 경제적 성공은 좋은 행정이 뒷받침된 결과다. 1990년 통일 이후 행정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투입됐다. 관료주의를 최대한 줄이고 창조적인 기여를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8월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드레스덴의 성공을 따라갈 만한 도시가 있다고 보는가.

▲(힐베르트 부시장) 북한을 방문한 것은 경제특구와 관련한 강연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특구 조성을 위해 국외 투자를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데 실질적으로 갖춰 있는 기반이 없었고 어떤 방식으로 해야할 지 방법을 잘 모르는 거 같았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구체적인 실천의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한 거다. 평양만 방문을 해서 잘 모르겠지만, 드레스덴처럼 될 수 있는 곳은 특구가 있는 개성 정도가 아닐까.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이후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여러가지 논의들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준비해야 할 부분은.

▲(바그너 박사) 가장 중요한 건 통일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통일은 반드시 온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두번째는 통일은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통일이 찾아올 수도 있다. 독일의 통일 형태와는 많이 다를 가능성이 크지만, 의외로 비슷한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독일인도 분단시절 통일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없어졌다. 폴란드는 100년 넘게 3개 국가로 쪼개졌다가 하나로 합쳐졌다. 독일 분단은 30여년, 한반도는 60여년이다. 폴란드와 비교하면 짧은 시간의 분단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한반도 통일 가까워졌다고 보는가.

▲(힐베르트 부시장) 어려운 질문이다. 여하튼 남북한 통일은 독일과 비교해서 훨씬 어려울 수는 있다.

(바그너 박사)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안하겠다. 다만 1989년 11월9일 아침에 독일 사람 그 누구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체코 서독 대사관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특별열차를 타고 드레스덴을 지나갈 때 "저 열차가 자유로 향하는 마지막 열차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과 11개월 뒤에 통일이 이뤄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이게 답이다.

chh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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