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이 환율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달러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다. 달러가치가 상승하게 되면 미국 경제의 회복 불씨가 꺼질지 모른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통화정책 당국이 환율을 얘기하는 건 이례적이다. 과거 미국은 환율 문제에 대해선 재무장관이 발언을 주도해 왔다. 2000년대 중반 미국 재무장관들은 '강한 달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당시 연준 의장을 맡았던 앨런 그린스펀은 환율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위안화 환율을 문제 삼는 것도 재무장관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공개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는 달러 강세가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명시했다. 조용히 있던 연준이 사실상 '구두개입'한 것이어서 외환시장에 파장이 컸다. 12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던 달러지수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 재무부는 통상 10월 중순에 각국의 환율정책을 평가하는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미국 통화당국에 이어 정부 차원의 환율 경고가 나올지 주목된다. 잭 루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주말 워싱턴 DC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경쟁적 환율 평가절하에 대해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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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지수의 일봉 차트:연준의 환율 발언 이후 달러지수는 조정을 받고 있다>



달러강세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 경제의 정상화와 출구전략 등 내부적 요인과 함께 유럽의 경기둔화, 일본의 양적완화 등 외부적인 요인이 담겨 있다. 환율전쟁의 측면에서 본다면 유럽과 일본의 전방위적인 공세가 달러가치를 밀어올리는 쪽이 더 가깝다.

그러나 미국이 환율 문제를 언급했다고 해서 유럽과 일본이 벌인 환율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은 달러가치를 낮춰서 경제살리기를 추진할 의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의 출구전략이 진행중인 가운데 파죽지세로 오르는 달러가치에 제동을 걸어 속도조절을 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대로 환율을 방치했다간 미국 경제에 피해가 예상되므로 옐로카드를 한 장 꺼내 경고한 셈이다. 선진국끼리 벌이는 환율전쟁 틈바구니에서 유럽과 일본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만큼 미국도 내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환율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면 금융위기 때와 달라진 세계공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각자도생의 국면에 들어섰다. 최근 5~6년간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중심으로 미국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극복했으나 이제는 '제 살길 찾기'에 나서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통화가치 낮추기 경쟁을 하고, 이를 위해 돈 풀기 정책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수출부진으로 성장률이 제로수준에 멈추자 공개적으로 유럽당국에 환율정책을 강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언제든지 돈을 더 풀어 엔저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엔화가 임계점을 넘어서지 않을 정도로 환율을 관리하고 싶은 게 일본의 속내다.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환율을 주제로 세계 각국이 대화했으나 각자의 입장을 말했을 뿐 의미있는 공조의 성과물은 없었다. 회의를 주재한 조 하키 호주재무장관은 최근 세계 각국의 환율 긴장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G20 회의는 금융위기 극복 이후 달라진 세계 각국의 분위기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한국도 적절한 대응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준금리를 더 낮추고, 경우에 따라 선진국처럼 양적완화(QE)도 준비해야한다는 지적(손성원 교수)이 나온다. 세계적인 흐름 변화에 우리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 대응의 핵심은 '환율'이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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