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나라 안과 밖에서 금융계 출신 인사들의 인기는 추락하는 모양새다.

국내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여야 지역후보와 비례대표 선출에 금융계와 경제관료 출신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는가 하면, 미국에서도 '은행 중의 은행'인 세계은행(World Bank) 총재에 월街나 경제관료 출신이 아닌 의학박사 출신인 김용 다트머스대학 총장이 내정됐다.

세계은행 총재의 인선은 국제 정치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결핵과 에이즈 퇴치에 20년 동안 매진해온 의료·행정 전문가를 내세운 것은 자본주의의 위기감 속에서 금융의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 아닌가 싶다.

과거 세계은행은 주로 개도국의 도로-항만 건설 등 '하드웨어' 경제개발에 중점적으로 차관을 지원했다. 한국이 대표적 수혜국이었다. 영동고속도로, 서울, 부산, 대구지하철, 부산·묵호항 등도 세계은행 차관으로 건설했다. 이후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세계은행은 특히 한국에 대해 구제금융 협상에서 가혹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요구하기도 했다. 신용제공에서 혹독한 조건 때문에 국제사회의 보편적 이익보다는 미국과 유럽의 이해만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과거 이 은행의 총재는 전통적으로 월가와 연결 고리가 있는 고위 금융관료들이나 유럽계 금융 고관들이 독식했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금융이 일부 종사자들만의 승자 독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복지와 행복을 추구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요구는 비등해졌다. 미국 정치지도자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도드-프랭크 법안(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이라는 엄격한 금융 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

김용 총장의 인생은 금융가의 '탐욕'과는 거리가 먼 공익적 삶에 헌신해온 인물이다. 그는 평소에 월가의 탐욕 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모든 학생에게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과거에 3M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3E를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3M은 돈(Money), 시장(Market), 자신(Me) 등 세 가지 항목이다. 반면 3E는 탁월함(Excellence), 사회적 약속(Engagement), 윤리(Ethics)를 의미한다. 시장에서 자신과 돈만을 추구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사회적 연대의식과 윤리를 갖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야 자본주의 탐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론을 펴고 있다.

아이티의 결핵 퇴치와 국제 의료활동 전문가로 활동하고, 세계보건기구 에이즈국장과 하버드 의대 국제보건·사회의학학장을 역임한 인물이 세계은행의 총재로 지명됨에 따라 향후 이 은행의 역할은 달라질 전망이다. 아프리카·중남미 최빈국의 질병·가난 퇴치로 사업의 무게중심을 좀 더 확고하게 옮겨가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금융의 역할 재정립 움직임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금융정책과 금융인의 '모럴'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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