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이호 기자 = 그는 재기 발랄하다. 초임 사무관 시절부터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익숙했던 이상주의자다. 자신을 스스로 '돈키호테' 같은 존재였다고 평가한다.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정통 경제관료의 길을 걷지는 못했다는 의미다. 관료 생활은 도전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1급과 차관급 승진은 행정고시 동기들과 비교해 빠른 편에 속한다. 바로 김상규 조달청장이다(사진). 

김상규 조달청장

 지난 14일 취임한 지 100여 일을 맞은 김상규 조달청장을 서울 반포에 있는 서울지방조달청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 청장은 "취임하고 국정감사 등을 거치면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공부할 게 많아 바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쇼맨십을 싫어해서 그 흔한 취임 후 100대 과제 등도 안 만들었다. 대통령이 강조한 소프트웨어 활성화 관련 방안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청장은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다. 관료 출신 특유의 권위적인 모습도 찾기 어렵다. 매사 경청을 한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에 더해진 재치있는 입담으로 주변 분위기를 밝게 하는 능력이 있다. 기재부 관료에서 1천여 명의 조달청 직원을 이끄는 소통형 CEO로 거듭난 셈이다.

김 청장은 "개발도상국 시대일 때는 후배를 혹독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회초리를 들더라도 진정성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래야 수긍하지 않겠나. 엘리트 조직일수록 더욱 그렇다"며 평소 조직관리의 소신을 밝혔다.

김 청장의 이력은 화려해 보이지만, 본인 스스로는 비주류였다고 평가한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28회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 국세청을 거쳐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무부의 세제실, 재정경제원의 예산실에서 일했다. 지방자치단체(전라남도) 파견도 갔고, 고위공무원으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지난 2010년 기재부 보직국장(예산실 경제예산심의관)으로 복귀했다. 2년 후에는 새누리당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다시 기재부 외곽에서 생활했다. 1년 후 개방형 직위인 기재부 재정업무관리관(차관보)에 선임돼 복귀했다가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직후인 지난 7월 차관급인 조달청장으로 임명됐다.

김 청장은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는 걸 무서워하지 않았다. 당과 청와대, 외부위원회, 지자체까지 겁 없이 옮겨다녔다"며 "청와대에선 과학기술비서관실 등 기존 경력과는 다른 분야에서 일했고 새누리당 나갈 때도 아무도 안 나가려 하는 상황이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경제관료가 가는 길을 가지 않아 솔직히 조직에서 제대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계산적이고 영악하게 행동했다면 못했을 일들인데, 돌아보니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자신을 낮췄다.

조달청 본연의 업무도 도전의 기로에 섰다고 했다. 국내 조달시장만으로는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가 해외시장 개척에 도전하는 이유다.

김 청장은 "국민들이 조달청을 잘 모른다. 계약대행하는 기관 정도로 알고 있는데, 직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조달업무가 국가 재정 운영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스스로 자각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 창출 기능을 가진 게 조달인데, 문제는 중소기업이 80%를 차지해 조달시장도 포화상태에 진입했다는 점이다"며 "그래서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장수(대기업)들이 해외에 나가서 싸움에서 지고 있는데 제2, 제3의 장수를 키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청장과의 일문일답.

--청장이 되고 나서 강조하는 점은

▲ 우리 직원들과 소통을 강조했다. 목표는 우리가 모두 갖고 있다. 이걸 어떻게 끄집어 내 현실적인 정책으로 완결 짓느냐가 제 역할이다. 제일 싫어하는 것은 쇼다. 쇼맨십. 취임하자마자 100대 과제를 만드는 등의 일들은 허망한 것이 많다. 취임 후 한 것이 있다면 소프트웨어 관련 업무다. 대통령 말씀이 있었다. 임명장 받을 때 소프트웨어 시장 조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저에게 그 역할을 맡기셨기에 서둘렀다. 현재 경제장관회의는 통과했는데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아직 현실화된 게 적다. 그래서 그런 걸 해보자는 게 제 뜻이다. 예산실과 협의해 낙찰 차익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장기 소프트웨어도 일감 제공이 중요한 데 그에 대한 대책에도 들어갔다. 더 중요한 건 기획과 집행의 분리다. 일반 건축물 짓는데 설계사와 시공사 있다. 소프트웨어는 아직 이 구분이 안 돼 있다. 그래서 발전이 없다. 계획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다만, 컨센서스를 형성해야 한다. 서로 이해관계를 맞춰야 한다. 시공사는 업무를 뺏긴다고 할 수도 있다. 많은 전문가와 관련 회의하면서 컨센서스를 형성해야 한다. 국민이 이해하게끔 노력을 더 해야겠다.

--소프트웨어 외에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 신기술이다. 신기술을 자주 사들여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을 높이려 한다. 더 나아가 해외 시장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조달시장에 중소기업이 80%를 차지한다. 좁은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 다만, 중소기업만 하다 보니 삼성과 현대와 같은 큰 장수(대기업)가 안 큰다. 중견기업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가장 큰 과제다.

--조달청의 기술공무원은 얼마나 되나

▲ 40% 정도 된다. 시설과 전기, 토목 등 제품을 봐야 하니. 그런 지식을 가진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이 많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기술직이 많아야 한다. 기술이 단순하면 행정직이 해도 되지만,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이공계가 많아야 한다. 이공계 지식은 명확하다. 1+1=2니까. 미국의 장점 중 하나가 이공계를 나와 인문계 일을 하는 인재가 많다. 즉,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 많다. 백수 실업이 많은 것은 교육정책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스포츠토토 사업자 선정에 대한 논란이 있다

▲ 이제 항고를 했다. 스포츠 토토의 서비스영역에 입찰대행을 받고 있다. 오래되지 않았다.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일련의 첨예한 대립이 있다. 우리가 볼 때는 협상 계약의 제안요청서가 성문법이 아니다.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부 조금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고 소송이 붙었다. 1심은 가처분이라 지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포기하면 정부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다. 그래서 즉시 항고를 했다. 국가 입장에서 바람직한 사업자를 고르는 것이 우리 임무다. 앞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서 진행하고, 소송을 통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하겠다.

--김부선 씨 때문에 나라 장터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개방은 언제 됐나

▲ 지난해 말에 개방했다. 아직 홍보가 덜된 것 같다. 내년부터 의무화되니 전자조달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민간 개방은 중소기업까지 확대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스스로 낙찰이 힘드니 나라 장터를 이용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 입찰 공고를 낼 때 우리를 통해서 하면 좋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은 이미 이용하고 있다. 규모는 20조원은 될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 방안은

▲ 정책적으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우리가 우선 구매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말했다시피 중소기업이 국내시장의 80%로 가득 찼으니 더 이상은 힘들다. 중소기업청도 싸게 하지 말고 가격을 더 해주자고 말하고 있는데 그건 예산의 문제다. 가치 확인이 돼야 하지 않나. 그래서 하는 것이 기술력 있거나 새로운 기술 제품에 가격을 더 줄 방안을 세우고 있다. 새로운 상품은 가격이 없는 것이니 수의계약을 통해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이 이에 안주하면 안 될 것이다.

--해외 조달시장 진출은

▲사실 해외 나가서 보니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해외에 중소기업들과 함께 전시회에 나가는 등 시장개척을 하고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코트라와 중소기업청도 하고 있는데 직접 보니 핵심은 결국 정부의 보증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좋다고 여기는 상품을 정부가 보증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 소개하는 것이다. 나름 네트워크망이 있으니 소개하는 것인데 직접적으로 그 나라에 나가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삼성과 대우 등 대기업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세한 기업은 해외진출이 쉽지 않다. 해외는 리스크가 커서 예전에는 대형선단을 만들어 정부가 도왔다. 우리나라 우수기업도 해외 나가서 당당하게 납품을 했으면 좋겠다. 그럼 해외시장 개척되지 않겠나. 히든 챔피언을 쓴 헤르만 지몬 교수가 있다. 헤르만 교수는 한국의 중소기업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삼성과 현대 등을 뒷받침할 만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량은 갖추고 있으나 국제화가 부족하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사실상 섬이다 보니 해외 나가기 어렵다. 앞으론 달라질 것이다. 중국이라는 새 세상이 열리고 있다. 다만, 중국이 너무 빨리 성장해 겁도 난다. 중국의 중소기업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세계적 대기업들이 공장을 지어 기술은 다 있을 것이다. 분업화는 더 잘 돼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어려운 환경에 있다. 한ㆍ중 FTA가 체결됐는데 이제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기술력 향상은 어려운 것 같다. 중국기업과 차별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chhan@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