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유가급락이 글로벌 디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가속할지, 한국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다.

최근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밑으로 떨어져 지난 6월 이후 40%가량 폭락하면서 미국채 금리도 대세 하락기조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은 미국이 수차례 내년에 금리를 인상한다고 예고했음에도 이런 장세인 것에 대해 디플레가 확실시되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유가하락은 물가를 떨어뜨려 단기적으로 서민들에게 좋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전체에 큰 충격을 주는 사안이다. 무엇보다 기업의 제조원가가 낮아져 마진이 더 떨어지는게 문제다. 재고가 쌓여 신규 투자가 멈추고, 고용이 줄면서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가 더 얼어붙는다. 저물가가 저물가를 불러와 소비나 투자 감소가 이어지는 올가미에 빠진다.

좀 어렵게 말하자면 기업의 투자활동 의사결정은 명목이자율이 아닌 예상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이자율로 이뤄지는데 유가급락 등으로 예상물가상승률이 음의 값을 가지면 기업이 투자활동을 줄이게 된다. 물가하락은 실질부채부담을 늘려 채무자로부터 채권자로 부를 이전시키는 효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돈을 빌린 사람이 빌려준 사람보다 소비성향이 크다고 할 때 이러한 방식의 부의 이전은 경제 전체의 수요위축을 일으킨다. 금융시장 차원에서도 디플레는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고 소비자들의 자산가치가 줄어들어 소비감소로 이어지는 역(逆) 자산효과가 발생한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은 이런 현상의 부정적 효과가 너무나 강력하고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 경제를 만신창이에 이르게 한 대표적 디플레 사례다. 실질GDP와 물가 하락, 주가 폭락과 대량 실업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미국경제는 황폐화됐다. 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 역시 대공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비슷한 양상이었다. 이 악성 고리는 한번 형성되면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같은 사상 유례없는 대응이 아니면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경제사(史)의 교훈이 있다는 점에서 각국 정책당국자들이 몸서리를 치는 것이다.

최근의 유가급락은 이런 글로벌 디플레 공포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에도 유가가 ▲ 미국과 OPEC의 치킨게임이 내년에도 쉽게 끝나지 않고 ▲이란과 이라크의 경제난 타결을 위한 경쟁적 증산 ▲ 자동차 연비를 높이는 등 환경에 대한 관심 고조 ▲ 전세계 석유 소비 주도 이머징국가의 경제침체 때문에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한 글로벌 디플레 심화 충격이 한국을 피해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선진국들의 저물가 저성장은 이들 국가에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국가의 수출과 성장에 악영향을 준다. 선진국처럼 무제한 통화 완화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한국은 특히 가계부채까지 겹쳐, 소비 여력이 살아나지 않을 것이므로 선진국들보다 더 심한 저물가 저성장에 빠질 수 있다. 뉴노멀(New nomal) 속에 L자형 하단의 바닥이 더 길게 오랫동안 드러누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경제가 뉴욕에서 출발한 화물선이 안갯속에 서서히 킹콩 섬에 접근하듯 디플레라는 괴물을 곧 만나게 된다는 우울한 얘기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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