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내달 15일 개정 상법 발효를 앞두고 적잖은 상장사들이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의 책임을 줄이고 권한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관을 개정했다.

특히 현대차 등 자산 1조원 이상 상장사의 정관 변경 비중이 더 컸다.

이에 대해 주주 권리 보호와 경영의 효율화라는 개정 상법의 취지를 경영진 편의대로 해석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 자료에 따르면 상장사 1천767개 중 40%는 올해 주총에 이러한 정관 변경안을 상정했다.

전체의 43.26%인 759개사가 이사(또는 감사)의 책임을 그 행위를 한 날 이전 최근 1년간의 보수액의 6배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의 경감 조항을, 39.57%인 657개사가 재무제표를 이사회 결의로 승인하는 조항을 각각 넣었다.

포스코와 대림산업, 일동제약, 풍산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주총에서 안건이 통과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10개 상장사 중 4개사가 개정 상법 발효를 앞두고 정관을 변경한 셈이다.

기업 규모가 클수폭 '책임 축소, 권한 강화' 경향이 뚜렷했다.

자산 1조원 이상 76개사 중 무려 65개사가 이사 책임을 축소하고 절반이 넘는 45개사가 재무제표를 이사회 결의로 승인토록 하는 정관 변경안을 냈다. 34개사는 두 가지 조항을 모두 넣었다.

기업집단별로 현대기아차그룹이 단연 눈에 띈다.

현대차[005380]와 기아차[000270], 현대제철[004020], 현대모비스[012330], 현대하이스코[010520], 현대위아[011210], 현대글로비스[086280] 등 주요 계열사들은 이사 책임을 경감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이미 변경했다. 이 가운데 현대글로비스는 재무제표의 이사회 결의 조항도 삽입했다.

대한항공[003490]과 한진해운[000700], 한진해운홀딩스[000700], 한진[002320] 등 한진그룹 계열도 이사 책임 경감과 재무제표의 이사회 결의 조항을 모두 정관에 넣었다.

STX[011810], STX팬오션[028670], STX조선해양[067250], STX엔진[077970] 등 STX계열과 CJ[001040], CJ제일제당[097950] 등 CJ계열 상장사도 이사 책임을 줄이고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관 변경안을 냈거나 이미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CGCG 측은 절반에 가까운 전체 상장사가 '개악'했다고 평가했다.

개정상법은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을 제한하고 주주총회 결의가 아닌 이사회 결의로 재무제표 승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강제조항이 아닌 회사가 선택할 수 있는 임의조항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재무제표 관련 정관 변경에 따라 배당결정 권한까지 이사회에 부여된다.

이수정 CGCG 연구원은 "정관을 변경하면 이사가 회사에 손실을 끼쳐 주주가 이사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할 경우 이사는 연봉의 6배 내에서만 손해배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사가 고의나 중과실로, 또는 자기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경우 이런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데, 실제 소송에서 고의나 중과실 등을 밝히기란 어렵기 때문에 이사 책임을 감면하는 조항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무제표의 이사회 결의 조항도 배당이 선진국보다 매우 낮은 상황에서 주주가 배당을 올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주주제안권마저 원칙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주를 제3자에게 배정할 때 주주통지를 의무화하는 등 주주 보호에도 나섰고 날로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과감하고 빠르게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정관 변경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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