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5년여간 '큰손' 외환딜러로 활약하다 퇴역해 개인 투자사무실을 운영하는 A씨와 송년 저녁을 함께했다.

그에 따르면 새해에도 시장은 드라마틱한 혼돈이 예상된다.

뭣보다 한국경제에 초대형 변수는 아베노믹스다. 달러-엔이 단기적으로 125엔까지 오르는 시나리오 속에, 원-엔이 800원대로 떨어질 지가 관심사다. 예컨대 유가 폭락속에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무려 17%대로 끌어올릴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돌발 충격 변수는 더 늘어나고, 눈부신 통신 수단 덕분에 시장의 움직임과 속도는 더 살벌해진다.

오프라인 신문 방송만 있던 시절에는 뉴스가 전달되는 데 시차가 있었고 시장의 반응도 숨돌릴 틈이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얘기지만 장내거래의 개장과 폐장시간도 구분돼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 곳곳에 수많은 시간 외 거래, 장외거래, 상품 간 연계거래가 눈이 핑핑 돌 정도다. 모든 거래는 헤지라는 명목으로 또는 전략적으로 서로 상상도 못한 상대방과 기관에 엉켜 있다.

매매 정보의 확산과 재생산도 차원이 달라졌다. 선수들은 인터넷,스마트폰,이메일,카카오톡,트위터 등에 항상 연결된 채, 정해진 거래 상대방과의 친밀함과 사적인 비밀조차도 '소셜네트워크'들에 잠식당해 있다.

분석과 전망은 당연히 빛을 바랜다. 프로그램과 알고리즘 투자(Algorithm trading)가 영역을 넓히면서 사람과 기계가 서로 반응을 서로 주고받아 어디까지가 전망의 경계가 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재능있는 트레이더와 투자의 귀재들도 수시로 망신살이 뻗친다. 빌 그로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짐 로저스 등의 예상도 하루만 지나면 구문(舊文)이 되고, '아무도, 아무것도 교조적으로 믿거나 떠받들지 마라'는 경구만 남게 됐다.

최근 몇 년간 시장참가자인 인간의 속성도 변했다. 이들의 유전자 속에 장착된 생체 시계의 속도와 기준도 변했다. 이는 또 이들의 행동을 바꾸어 놨다. 더 조급해지고, 더 즉자적이고, 결과적으로 좀 더 쏠림이 격해지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팽창과 위축(Boom & Burst)의 반복에 가속이 붙고, 강약의 패턴화가 어려워지자 시장 적응에 피로감은 훨씬 커졌다.

오래된 외환 전문가조차 자신의 과거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를 설명해보지만, 이는 모든 게 번번이 파편화된 과거 시점의 연장일뿐 괴물처럼 변한 현재의 의미를 명료하게 분석해내지 못한다.

시장이 느리게 움직이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선임자들이 초심자들에게 도제식으로 훈련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베테랑조차도 수시로 적용하지 못할 과거의 경험을 벗어던지고 망각의 총량을 늘려보지만, 오직 과거의 단편과 단절된 흔적, 순간적이고 거의 파악할 수 없는 쪽으로 내몰리며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르게 됐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이 퇴역 외환딜러는 2015년에도 과거와 달리 에너지와 주의를 집중할 수 없을 지경으로 더 힘들고 불편해지며, 시장이란 어떤 곳인가, 형체와 특징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한 답도 없는 질문은 계속될 것 같다고 관측했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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