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선거의 계절인 탓인가. 글로벌 금융 및 재정위기에 대한 대응과 논의는 종적을 감춘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경쟁적으로 복지 공약에 골몰하면서, 국제금융, 거시경제 전문가들이 '토사구팽(兎死拘烹)' 당하고 복지관련 재정 전문가들의 목소리만 커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위기는 잠잠해졌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며 잠복한 '활화산'일 뿐이다. 한국 경제의 최대 취약성은 여전히 외국계은행 한국지점이 들여오는 외화부채 문제다.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성취를 일궈 냈지만, 자체적으로 달러금리를 제어할 능력이 없는 상황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우리는 항상 대외균형에서 문제가 생기고, 금융시장이 망가지고 실물이 어려움을 겪는다. 헤지펀드 등 금융 플레이어들은 이런 '구멍'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달러금리 상황에 따라 자금을 조달해 국내 채권에 '금리 차익거래'를 구사한다. 채권시장을 통해 들여온 자금은 원-달러 환율 압박으로 작용하고, 외환시장의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작고 100% 개방된 경제 체제가 가진 숙명이다.

올해가 아무리 정치의 해라고 하더라도 경제정책을 관장하는 정부는 자본 유출입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한 고민을 지속해야 한다. 국내 금융시장에 한해 달러금리와 달러부채 규모를 제어하고, 금융 주기를 주도하는 부채의 증감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당연히 자본통제는 우리나라 독자적으로만 시행해서는 어려움이 따른다. 글로벌 금융자본이 자유로운 국가 쪽으로만 흘러갈 것이고 우리만 고립될 수 있는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공조가 필요하고 금융 외교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지난주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시점에서 한국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자본 유출입의 위험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 장관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서 든든하다.

그는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잦아들어 위험 선호도가 되살아나면 막대한 무분별한 자금이 신흥국으로 들어올 것이며, 이에 따르는 위험은 기존의 틀로 대응할 수 없다며 우려했다. 그러면서 자본 유출입에 대한 다양한 규제 세트 중에서 쓸 수 있는 것과 써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매일 아침 보고받는 국내외 경제 동향 지표들이 조금 나아져 위기가 완화됐지만 여전히 안개는 쉽사리 걷히지 않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큰 배의 조타수가 된 기분으로 경험칙과 감각에 의존해 방향타를 미세조정해가며 암초를 피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재가 '태평성대'가 아닌 위기의 진행형이며 한시도 고삐를 놓을 수 없다는 진단이었다.

정치의 계절에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쏟아내는 각종 경제 복지 공약은 대외균형이 확실히 담보하고 난 연후에나, 재원조달을 전제로 가능한 부차적 이슈들이다. 한국 경제가 대외 부문의 치명적 약점이 해결되지 않은 불확실한 상태에서, 고용할당제, 저축은행 피해자구제, 초 중고교생 아침 무료제공, 0~5세 전면 무상교육, 사병월급 인상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진단 말인가. '대외적으로 설마 안정되겠지'라며 요행에 의지하지 말고, 사전적 방어 시스템 구축에 집중해야할 시기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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