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외딴섬에서 남자 셋이 하루 세끼 밥을 차려 먹는 일을 보여주는 '삼시세끼-어촌편'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다.

배우 유해진이 악천후로 음식재료를 구해오지 못해 고군분투하다가 방에서 휴식을 취하며 차승원에게 묻는다. "배부른 돼지가 좋냐, 아니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래?" 차승원이 부실한 먹거리에 대한 갈망 때문에 "배부른 돼지"라고 답하자, 유해진이 "난 돼크라테스(돼지+소크라테스) 할래"라고 되받는다. 폭소가 터진다.

배부른 돼지도 뿌리칠 수 없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도 포기할 수 없다.

인류 문명사는 언제나 먹는(현실) 문제에서 출발해, 삶의 의미를 찾는(이상) 조화로운 삶을 지향했다.

작가 김훈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입과 항문이다. 나머지는 부속기관이다"고 정의했다. 인간은 양쪽 입구가 터진 자루를 가진 짐승이라서, 뭔가를 쉴새 없이 채워 넣고 배설해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성경 창세기편에 하느님은 아담을 낙원에서 쫓아내고 뒤통수에 대고 말씀하신다.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너는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오늘날 TV는 땀과 고통, 삶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특히 '과정'을 애써 외면한다.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 성공한 삶, 멋진 이색 장면, 그야말로 완성품 결과물만 가득하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의 실제 인생살이와는 늘 딴 세상이다.

이런 가운데 '삼시 세 끼'는 모든 끼니가 '네버 엔딩 스토리'이며, 한 끼를 차리는 과정의 노고와 먹는 것의 소중함을 싫증 나지 않게 보여주고 있다. 함께 준비하고, 보는 이의 침이 고이게 같이 맛있게 먹고 깨끗하게 비우는 행복한 감정, 그리고 찬물에서 설거지를 같이하면서 대화와 소통의 소중함도 보여준다.

아주 잘 먹으려 할 필요도 없고, 대충 때워서도 안 되는 음식의 귀함 못지않게, 과정을 함께 하는 일상성의 경건함에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 도시의 삶은 어렵게 자급자족할 필요도 없고, 모든 음식은 손에 닿는 곳에 있다. 스스로 한 끼를 위해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지, 반복에 지쳐 성의없이 대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만든다. 또 우리가 새로운 것에만 너무 에너지를 쏟고, 주변의 소소하고 소박한 맛을 놓쳐가지 않았나 각성시키고, 매 끼니를 준비하는 '과정'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고리였음을 깨닫게 한다.

인간이 그렇다고 온종일 먹는 것에만 매달리는 존재는 아니다. 음악도 들어야 하고, 삶의 의미를 사색하고, 불안한 미래를 달래며 신에게 기도도 해야 한다. 물론 바탕에는 영혼이나 사상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먹는 문제, 요즘 말로 하면 '민생'의 존엄함이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설 연휴 이후 이렇게 중요한 민생을 진짜 챙기고 경제살리기와 경기활성화에 '올인'해야하는 데, 성의없고 준비안된 '퉁퉁 불어터진 국수'만 내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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