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가 경제 전체가 실질적이고 심각한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졌다.

2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실질적으로 사상 첫 '마이너스'이고, 작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보다 낮았다. 국내외 IB는 올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일본의 '잃어버린 세월'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경고음이다. 소비가 줄고 물가가 떨어져 기업이 위축되고 실질 임금이 떨어지면서 다시 소비가 죽는 '축소 균형의 늪'에 바짝 진입했다는 걸 의미한다.

인플레에는 가용할 정책수단이 많지만, 이런 디플레에 빠지면 국가 전체적으로 대재앙이기 때문에 이에 맞서는 노력이 필사적이다. 배당률을 높이고, 임금을 올려주는 기업에는 혜택을 주고, 최저 임금을 올리며 몸부림을 치는 상황이다.

디플레 방어를 위해 특히 최경환 부총리는 소비를 늘리고자 기업의 임금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즈음에 국내 최대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가 종업원들의 기본급 임금을 동결했다는 소식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6년 만에 처음으로 이 회사가 임금을 동결하자 다른 삼성 계열사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고, 이는 1차 2차 3차 협력회사, 심지어 모든 관련회사와 공장의 인근 식당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매출 200조 원에 영업이익 22조 원, 현금을 168조 원이나 쌓아둔 제일 잘 나가는 회사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되면, 이 보다 못한 다른 기업들은 '더 내핍해야겠다'며 너도나도 임금과 비용 삭감에 나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가 경제 전체와 소비 심리에 타격을 줄 것을 헤아리지 못한 이런 결정을 삼성 그룹 내부에서 도대체 누가 주도했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회사 내부적으로 종업원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비용 절감을 해야 하는 긴박성도 있을 터이지만, 여타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못한 채 정부가 추진하는 경기활성화와는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이병철 이건희 등 선대가 지속 가능한 성장 범위 안에서는 종업원에게 최대한 복지를 베풀며 '사업보국(事業報國)'했던 방식과는 달리, 이재용 3세 체제로 바뀌면서 노동자와 협력업체에 소득을 환류시키기보다는 회사만 살고 보자는 경영으로 좁혀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국민의 땀과 희생, 협력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기업이, 경제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국가 대표 기업'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최경환 경제팀의 경기활성화 노력은 '축소 균형의 늪'이라는 포위망에 빠져 질식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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