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가장 솜씨 좋게 통화정책을 구사하는 중앙은행 총재는 누굴까. 각국의 상황이 다르니 누구의 솜씨가 더 좋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굳이 한 명 꼽으라면 영국중앙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의 마크 카니 (Mark Joseph Carney)총재가 아닐까.

마크 카니는 캐나다 국적으로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2월부터 2013년 5월까지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로 있으면서 캐나다 경제의 골디락스를 이끈 주인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694년 창립돼 중앙은행의 원조격인 BOE가 자치령이지만 한 때 식민지였던 캐나다인을 총재로 영입했다는 점에서 마크 카니의실력은 다시 한 번 검증된 셈이다.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시절 저금리 정책을 주도했던 그가 영국에서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지난주 영국 의회에 출석해 "저유가로 촉발된 물가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부양책을 쓰는 것은 정말 멍청한 일(extremely foolish) "고 지적했다.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향후 수개월 안에 0%까지 하락하고 연말까지도 그런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저유가 등 공급요인으로 물가 하락세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통화정책으로 섣불리 대응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BOE도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QE) 등 글로벌 환율 전쟁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 왔다. 이번 의회 출석도 압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영국의 금융안정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동산 시장을 꼽으며 오히려금리 인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신념을 다시 드러내기도 했다.

마크 카니 총재가 우리나라 상황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혹시 소비자 물가가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며 기준금리를 덥석 내린 한국은행(BOK)이 정말 멍청한 일(extremely foolish)을 했다고 타박하지는 않았을까. 기대인플레이션이 2%에 이르고 3%대의성장률 전망을 제시한 나라가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구사한 데 대해 동의할 수 있을까.

카니 총재는 공급요인의 물가 하락에 섣불리 대응할 경우 부작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유가 하락에 따른 저물가에 대응하기 위한)추가적인 부양책은 불필요한 변동성만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유가 하락에 따른 공급요인으로저물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금의 저물가는 공급 요인에 따른 부분이 상당하다며 기준금리 동결의 배경으로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 총재가 저물가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한 달이라도 빨리 기준금리를 인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과 한 달 만에 입장을 바꾼 셈이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1천1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에 대해서 정부와 협의해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가계부채가 정부와 협의해 미시적으로 관리 가능한 사안이라면 여태껏 왜 안했을까. 세월이 지나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에 타격을 줬을 때 세상은 2년 남짓 재직할 것으로 보이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보다 이 총재가 저금리를 주도한 탓이라고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이 총재는 정작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답변하지 않았다. 다시 묻고 싶다. 지금이 2008년 리먼 사태에 따른글로벌 금융위기 직후(기준금리 연 2.00%)보다 엄중한 상황인가.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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