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20세기의 자원인 석유는 21세기에도가장 중요한 에너지 자원입니다. 자동차와 항공기, 건설기계 등 사실상 모든 교통·산업설비가 석유로 움직입니다. 산유국들은 석유 수출로 큰 이득을 챙기고, 수입국들은 석유에 막대한 자금을 지출합니다. 작년부터 급락하고 있는 국제유가는 산유국 러시아 등을 경제위기로 빠뜨리고, 유럽 등 수입국들을 디플레이션으로 몰아붙이는 등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저유가 국면은 그동안 등락을 반복해왔던 것과 달리, 단기간에 회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연합인포맥스는 저유가의 원인으로 지목된 셰일혁명의 본산 미국 텍사스를 찾았고, 경제위기에 부닥친 러시아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본부 프랑스 파리, 국내 산업계 등도 취재했습니다. 앞으로 11편에 이르는 기사와 2부작 다큐멘터리, 국제 콘퍼런스 등을 통해 정부와 산업·경제계 전반에 인사이트(Insight)를 제시하겠습니다.>



(모스크바·휴스턴·파리=연합인포맥스) 김대도 김지연 정원 기자 = 작년 하반기 이래 국제유가가 급락을 거듭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산유국들의 재정수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 이른바 반미(反美) 국가의 재정여건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이야기가 나올만큼 최악이 됐다.

텍사스를 중심으로 호시절을 맛봤던 미국경제에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저유가로 채산성이 떨어진 셰일업체들의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문을 닫는 곳도 늘고 있다.

저성장이 글로벌 경제에 화두가 되는 와중에 저유가는 전세계 디플레이션을 가속화하는 새로운 위협요인으로도 등장했다.

세계 최고의 에너지 전문가로 평가받는 대니엘 예르긴(Daniel Yergin) IHS 부회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유가하락으로 미래생산에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곳은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국제유가, 얼마나 추락했나

국제유가는 지난 2011년부터 3년간 월평균 배럴당 100달러 이상을 보였다. 브렌트유 기준으로 작년 6월 배럴당 115달러까지 갔던 유가가 하반기부터 급격히 하락했다.

작년 11월엔 석유수출국기구 오펙(OPEC)이 감산에 합의하지 않으면서 60달러대로 진입했다. 최저점인 올해 1월 중순에는 46달러까지 빠졌다.

7개월만에 60%나 내렸다. 이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008년 정도에만 불 수 있는 폭락이다.

국제유가가 올해 하반기 70달러 이상의 일정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최근 원유를 결제하는 달러의 초강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10개국의 예멘 공습,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 타결 시나리오 등으로 유가전망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국면에 들어갔다.

 

<그래픽=조현주 디자이너>

◇러시아·베네수엘라 등 反美 국가에 '치명타'

유가하락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 경제제재와 함께 러시아 경제를 크게 위축시켰다. 러시아 경제에서 석유·가스부문이 치지하는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 수출의 3분의 2, 재정수입의 절반에 이른다.

러시아 고등경제학교에 따르면 올해 경제성장률은 최악의 경우 마이너스(-) 7%로 예측된다. 지난 2008년 -8%에 비견되는 수준이다. 루블화는 50%이상 폭락했다.

레너드 그레고리에프(Leonid Grigoryev)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교(HSE) 교수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면 매일 7억달러 이상을 석유수출로 버는 것이고, 50달러면 절반이 된다"며 "외화수입이 줄면 루블화 가치는 하락한다. 단순하지만 규모가 거대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균형재정 수준이 배럴당 160달러 정도인 베네수엘라는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임박한 것으로 진단된다. 석유가 수출의 95%, GDP의 25%에 달하고, 정부재정의 50%를 차지한다.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났다.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5년물은 작년 상반기말 922bp에서 올해 1월중순 8천219bp까지 791% 급증했다.

 

<그래픽=조현주 디자이너>

유가가 120달러 이상이 돼야 하는 이란도 충격을 받고 있다. GDP중 석유산업 비중이 28%다. 7천5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쌓아둔 사우디와 달리 이란의 외환보유액은 700억달러가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프라에 집중 투자해 빠르게 성장한 나이지리아도 저유가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다. 재정수입의 70%를 석유에 기대고 있다. 알제리도 재정의 70%를 석유로 충당하는 석유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그외 사우디와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주요 중동 산유국들의 재정도 감소하고 있다.

안톤 하프(Antoine Halff) 국제에너지기구(IEA) 석유산업시장부장은 "높은 석유가격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은 완충제의 역할을 한다"며 "사우디는 완충 역할을 위해 충분한 현금보유량을 가지고 있지만, 이란이나 베네수엘라, 알제리 같은 국가들도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원유 수입국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

석유 수입에 막대한 돈을 지출하는 유럽 국가들에게 유가하락은 호재로 다가왔다.

유럽의 맹주 독일은 저유가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기존보다 0.2~0.3%포인트 높은 1.5~1.6%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독일의 석유 수입규모는 작년보다 25% 감소한 120억유로 수준으로 예상된다. 독일 DAX30 지수는 저유가와 유동성 랠리 덕분에 작년 10월이후 46% 이상 뛰며 역사상 처음으로 1만2천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 재무부에 따르면 유가하락이 영국 경제성장률을 0.5%포인트 상승시킬 것으로 보인다.

사라 램퍼트(Sarah Lampert) 영국 에너지 기후 변화부 팀장은 "영국은 에너지 순수입국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업에 긍정적"이라며 "휘발유 가격이 2009년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개별 소비자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영국 경제에 매우 중요한 북해 석유산업에 대한 영향은 주시하고 있다"며 "말하기 이르지만, 일부 기업은 설비 투자비용(CAPEX)을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라 램퍼트(Sarah Lampert) 영국 에너지 기후 변화부 팀장이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저유가와 영국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김지연 기자>

국내에선 최경환 경제 부총리가 지난 1월 "유가가 30% 하락하면 가구당 연간 유류비가 50만원 가량 절감된다"고 말하는 등 경제 전반에 호재임을 강조해왔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20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저유가가 기업 채산성에 긍정적이라는 대답이 39%로, 부정적이라는 답변 15%와 두배이상 차이가 났다.

그러나 최근 저유가가 물가의 하방압력으로 작용해,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인 유럽 등에서 나오는 얘기다.

산업분야에서도 저유가가 호재라고만 볼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이상화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해외플랜트 건설과 조선산업, 해양, 화학산업 일부 품목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과거 우리나라는 석유와 철광석,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구간에서 경제가 더 좋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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