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연합인포맥스) 김대도 기자 = 루블화 가치 폭락과 대규모 해외자본 유출,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두자릿수 인플레이션.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맞닥뜨린 상황이 경제공황 초기형태라고 진단했다.

그들은 저유가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대외변수가 결국 해결되더라도 국내 경제모델의 체계적인 구조개혁 없이는 경제공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레그 부클레미쉐프(Oleg Buklemishev) 모스크바 국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퍼펙트스톰(총체적 난국)이다. 석유값이 기적적으로 원상복구되더라도 다시 경제가 되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지표는 '아수라장'

작년 3월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금융제재가 시행되고, 하반기 저유가 쇼크를 맞으면서 러시아 경제의 역성장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991년 구소련 붕괴와 1998년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 선언때도 유가하락이 주원인이었다.

러시아 경제개발부에 따르면 작년 러시아 경제성장률은 0.6%였다. 2011년 4.3%, 2012년 3.4%, 2013년 1.3%에서 매년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4~-7% 범위에서 경제 규모가 쪼그라들 것으로 점치고 있다.

루블화 가치는 작년 상반기말 기준 달러당 33.8루블에서 지난달 69.6루블로 50% 이상 폭락했다.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170bp선에서 626bp까지 뛰었다.

물가상승률은 2012년 5.1%, 2013년 6.8%에서 작년 11.4%로 급등했다. 올해 들어 인플레이션은 더 심화되고 있다. 지난 1월은 연 15%, 지난달은 16.7%를 보였다.

작년말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0.5%에서 연 17%로 한번에 650bp를 인상한 것도 이때문이었다. 기준금리는 이후 두번에 걸쳐 14%로 하향됐다.

<지난 2월 중순경 모스크바 거리의 환전소. 이날 달러와 유로 대비 루블화는 각각 60루블대와 70루블대였다. 작년 상반기 달러당 30루블대, 유로당 40루블대에서 폭락한 모습이다./사진=김대도 기자>

◇러시아 재정·산업계 '초토화'

해외자본이 급속히 빠져나가고, 주식시장(RTSI)은 60%나 주저앉았다. 작년 1천340억달러 해외자본이 유출됐고, 올해는 1천2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러시아 중앙은행은 예측했다.

외환보유고는 작년초 5천500억달러에서 1년만에 3천800억달러로 급감했다. 폭락하는 루블화를 방어하는데 사용됐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이유 탓에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앞다퉈 러시아와 국영기업을 정크(Junk)등급으로 평가했다.

지난달 무디스는 'Baa3'로 내린지 한달만에 다시 'Ba1'으로 강등했다. 무디스는 올해 자본 유출 규모를 2천700억 달러, 물가상승률은 22%, 경제성장률 -8.5% 등으로 추정했다.

1월에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BBB-'에서 'BB+'로, 피치는 'BBB'에서 'BBB-'로 내렸다.

금융·산업 전반에도 대형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민간 트러스트방크와 2~3위 은행 VTB와 가스프롬방크의 금융구제에 총 4천190억 루블(약 9조원)을 썼다.

가스값도 유가에 연동되기 때문에 러시아 최대 국영기업인 가스프롬(Gazprom)의 매출이 20%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내 수요가 급감하자, 경제교역이 활발한 인접국 벨라루스 등도 타격을 입고 있다.

<그래픽=조현주 디자이너>

◇유가 상승해도 회복 '불투명'…경제구조 개혁해야

당분간 러시아는 높은 경제 성장률을 담보하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대다수였다.

유가가 현재 배럴당 50달러 수준에서 하반기 60~8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대체적인 전망에도, 서방제재가 계속될 것인데다 특히 석유 의존적인 러시아 경제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진단에서다.

투자금융회사인 메트로폴의 안드레이 로즈코프(Andrei Rozhkov)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현재는 하락초기 국면"이라며 "장기투자 목적으로 러시아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탈리아 아킨디노바(Natalia Akindinova) 고등경제학교 개발센터 소장은 "현재 위기는 러시아의 큰 약점들을 모두 건드리고 있다"며 "국내 투자시장이 허약한 점, 석유와 관계 깊은 점, 해외 자본투자에 많이 의존하다 서방제제로 끊긴 점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2008~2009년에는 볼 수 없었던 실질 국민소득이 6~10% 감소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며 "당시보다 비축된 자본이 부족해, 환율에 간섭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킨디노바 소장은 내부적인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사업이나 중소기업 등을 활성화시키고, 내부 투자를 육성해야한다"며 "은행 예금이 쌓여 산업에 투자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방제재를 받는 가스프롬(Gazprom)이나 로즈네프트(Roseneft), 스베르방크(Sberbank) 등 국영 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기 때문에, 이들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탈리아 아킨디노바(Natalia Akindinova) 고등경제학교 개발센터 소장이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경제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김대도 기자>

◇"그래도 모라토리엄·디폴트는 없다"

그러나 러시아의 모든 전문가들은 러시아 경제가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이나 디폴트(채무불이행) 등의 극단적 상황까지는 가지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 최근 달러당 환율은 57.7루블로, 5년물 CDS프리미엄은 626bp에서 390bp선까지 안정을 찾으며 금융시장 우려가 가라앉고 있다. 주가시장(RTSI)도 저점 대비 48%이상 올랐다.

나탈리아 오를로바(Natalia Orlova) 알파방크 수석 애널리스트는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대비 국채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중 하나"라며 "GDP대비 국채는 10%, 기업부채는 40%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라토리엄 등이 거론된 것은 작년 러시아가 서방에 대한 맞제재 조치를 취할때, 환율통제를 실시할 수도 있다는 정치적 우려가 나온 시점이었다"며 "하지만 작년말 정부는 환율통제를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모라토리엄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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