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휴스턴·파리=연합인포맥스) 김대도 김지연 정원 기자 = "최근 유가 급락의 배경에 대한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받는다. 유가 하락에 따른 영향은 회원국들 사이에서도 가장 큰 걱정거리다"

케이스케 사다모리 국제에너지기구(IEA) 에너지안보국 국장은 저유가 쇼크에 대한 회원국들의 우려를 이같이 전했다.

사다모리 교수는미국의 셰일혁명으로 늘어난 공급량이 정체된 수요량을 초과하고 있다는 분석을 가장 먼저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에서는 석유상품에 머물러 있던 국제 투기자본이 한꺼번에 빠지면서 유가가 급락했다는 진단도 있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가 에너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채산성이 낮은 미국의 셰일업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시각도 나왔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4년간 유가 '고공행진'

근래 4년동안 국제유가는 지정학적 불안감 때문에 100달러를 크게 상회하며 고공행진을 이어왔다.

지난 2011년 초 하루 16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던 리비아에서 내전이 발생해, 그해 8월 원유생산이 전면 중단됐다. 2012년 서방 국가들의 이란 원유 금수조치에 따라 이란의 원유 생산량이 급감한 사례도 있다.

 

<그래픽=조현주 디자이너>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석유 수요가 증가한 것도 유가 고공행진을 부추겼다.

공급의 불확실성이 커진 반면 수요는 견고했던 셈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이 고유가 정책을 강하게 밀어부친 점도 100달러 시대의 배경이었다.

◇파면 나오는 '셰일오일'…저유가에 결정타

대부분의 글로벌 에너지 전문가들은 미국의 셰일오일이 저유가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셰일 영향으로 미국내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덕분에 미국의 원유 수입이 감소했고, 주요 원유 수입국 중 하나인 중국의 수요마저 줄어들면서 수급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픽=조현주 디자이너>

지난해 6월 말 107달러까지 치솟앗던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올해 3월 17일 43.46달러를 기록, 절반 이하로 급락했다.

다만 이전과 달리 공급 과잉을 주도했던 것은 OPEC이 아닌 미국을 필두로 한 비OPEC 국가들이었다.

IEA에 따르면 지난 2005~2012년 사이 비OPEC 국가들의 평균 원유 공급량 증가분은 매년 39만배럴 수준에 불과했지만, 2013년 130만배럴로 늘었고 작년 200만배럴로 껑충 뛰었다.

비OPEC국가의 원유 생산량 중 미국의 공급 비중이 80%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가를 100달러 밑으로 끌어내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쪽은 단연 미국의 셰일오일인 셈이다.

안톤하프 국제에너지기구(IEA) 석유산업시장부 부장은 "그간 고유가는 비전통자원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공급은 늘어난 반면 예상보다 수요 증가가 더뎠던 점이 현재 저유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SK건설 미국법인 호세 만탈보 사장도 "(수급 등)시장 원리에 따른 주기적인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중동 산유국의 '美셰일 죽이기'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증가세를 보임에 따라 생산단가 차이를 이용한 '치킨게임'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셰일 생산비용이 전통방식의 오일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60~70달러선에 분포돼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가 하락기에 어김없이 등장했던 OPEC의 감산 발언이 없었다는 점은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며, 유가 하락폭을 키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유가 하락이 본격화되면서 시장 참가자들은 지난해 OPEC의 11월 정례회의에서 감산 발언이 등장할 것으로 점쳤지만, OPEC은 원유 생산량 동결을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시장지분을 방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1월 26일 77달러 수준이었던 브렌트유 가격은 OPEC의 생산량 동결 조치에 따라 하루만에 5.17달러 폭락했고, 이같은 흐름이 지속되면서 지난 1월 13일 46달러선까지 낙폭을 키우기도 했다.



케이스케 사다모리 IEA 에너지안보국 국장은 "석유 생산량이 증가한 첫번재 배경은 북미의 셰일오일과 캐나다의 오일샌드의 영향이다. 이후 OPEC이 감산 불가의 입장을 강조한 점이 이후 유가급락을 가속화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간 지정학적 불안에 따라 원유 공급에 문제를 드러냈던 리비아와 이라크의 원유 생산이 일정 궤도에 오른 점도 이같은 추세를 부추겼다.

올들어 이라크가 원유 생산량을 하루 30만배럴 가량 늘렸고, 한때 '0'에 근접하는 생산량을 보였던 리비아도 지난해 10월 하루 87만배럴까지 생산량을 끌어올렸다.

◇저유가는 투기자본이 만들었다

일부 러시아 전문가들은 국제 투기자본이 저유가 상황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원유 가격이 현물수급이 아닌 선물 등 파생상품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측면이 강화됐다는 분석에서다.

지난 2월 국제결제은행(BIS)은 대형투기자본 등 금융자본에 의해 유가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등 석유의 금융자산화 현상을 경고하기도 했다.

가스프롬의 수출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 가스프롬 엑스포트의 세르게이 코믈레프 가격조정실장은 "유가가 100~110달러 수준이었을 시기 상장지수펀드(ETF) 등 석유선물거래 투자가 대규모로 이뤄졌다"며 "수급에 따른 유가 변동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특성으로 인한 급락이다"고 설명했다.

콘스탄틴 시모노프 러시아 국가에너지 안보기금 제네랄 디렉터도 "지난 2008년도에도 유가가 100달러나 빠졌지만 원유 생산이 줄지 않았고, 현재의 유가급락 상황에서도 수요가 변하고 있지 않다"며 시장이론만으로 유가 변동의 원인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석유 거래 시장을 보면 95%이상이 선물 거래"라며 "선물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인 만큼 투기자본이 급격한 유출이 유가 하락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100弗시대 끝났다…변동성 확대 주목해야

안톤하프 국제에너지기구(IEA) 석유산업시장부 부장은 "셰일오일은 생산 비용이 항상 변하는 역동적인 시장인 만큼 고정된 방식의 전통자원 시장과는 다르다"며 "셰일오일의 생산 비용이 지금 이순간에도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후 유가의 변동성이 더욱더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셰일 등 비전통자원은 개발에서 생산까지 주기가 매우 짧고 전통자원에 비해 자금의 회수 기간도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공급 변화가 가격에 탄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만큼, 셰일오일 생산의 축소 뿐 아니라 확대 또한 용이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IEA는 이달 보고서에서 "유가가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락세는 지속되고 있다"며 "가격이 원만한 흐름을 보일 것이란 기대는 과도한 낙관론"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의 시추 설비들이 잇따라 감소하면서 유가가 50달러선에서 60달러 수준으로 상승했지만, 구조조정을 끝낸 미국 셰일업계가 생산량을 되레 늘리고 있어서다.

미 에너지정보청(EIA)는 지난주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936만배럴 수준으로, 이는 1982년 이후 최대치라고 설명했다.

지난 16일 43.99달러 수준을 보이고 있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가장 먼저 30달러대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부분의 국제 전문가들은 유가의 향후 방향성에 대해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했다.

 

<자크사피르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교수가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유가의 방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사진 = 정원 기자>

자크사피르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교수도 "아주 낮은 가격으로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유가의 방향성 분석을 위해 고려해야할 변수가 늘면서 계산이 더욱 난해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레너드 그리고리에프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교(HSE) 교수는 "(방향성을 알고 싶다면)차라리 동전을 던지는 것이 낫다"고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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