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SK하이닉스가 일본의 엘피다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의 시선이 삼성전자에 쏠리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 2,3위 업체가 합칠 경우 그동안 시장을 독주하던 삼성전자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삼성전자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두 업체가 합칠 경우 지금보다 강력한 경쟁자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지금까지처럼 선제 투자를 통해 경쟁우위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오히려 삼성전자는 메모리 업계 동향보다는 비메모리 부문에서 전략을 마련하는 데 더욱 집중하는 모습이다.



◇ 하이닉스-엘피다 합병설…삼성 "두고 봐야" = 메모리 반도체 업계 2위 업체인 SK하이닉스(23.7%)가 업계 3위인 엘피다(11.9%)를 실제로 인수한다면 시장점유율은 35.6%까지 올라간다. 이 경우 업계 1위인 삼성(43.2%)와의 격차는 7%포인트 정도로 줄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삼성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우선 하이닉스가 엘피다를 실제로 인수할지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와 엘피다의 합병 자체가 성사될지도 아직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합칠 경우를 가정해 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업계에서도 하이닉스의 엘피다 인수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최근 실시된 신주 발행으로 하이닉스의 보유현금이 4조2천억원 수준까지 늘어났지만, 설비투자와 미래를 위한 유보금 등을 고려하면 당장 쓸 수 있는 자금은 1조5천억원 정도로 분석된다. 따라서 최대 3조원으로 추산되는 엘피다를 인수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또, 차입금이 5조원에 달할 정도로 엘피다의 재무구조가 불안한데다, 사업구조 자체도 수익성이 좋은 모바일용 D램 대신 수요가 줄어드는 PC용 D램에 집중돼 있어 하이닉스가 인수했을 때 시너지도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결국 하이닉스의 엘피다 입찰 참여는 실제 인수보다는 정보수집과 경쟁사 견제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하이닉스가 엘피다 인수입찰에 참여한 것은 경쟁사들이 엘피다를 헐값에 인수할 가능성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판단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치킨게임' 승리한 삼성 "경쟁사 합쳐도 문제없어" = 최근 몇 년간 D램 업계에는 거대한 태풍이 몰아쳤다. PC 수요가 감소하면서 핵심 부품인 D램 가격도 급락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9월까지만 해도 D램 가격(DDR3 2기가비트 기준)은 4.34달러였지만, 불과 1년 만에 작년 말에는 0.8달러 수준까지 곤두박질 쳤다.

이처럼 업황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반도체 업체들은 경쟁 업체를 따돌리고자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생산량을 확대하는 '치킨게임'에 나섰다. 특히 업계 1위인 삼성은 대량 생산라인 건설과 신제품 개발을 병행하며 경쟁업체를 압박했다.

그 결과 지난 2009년부터 작년 말까지 경쟁업체인 하이닉스(22%→23%)와 엘피다(17% → 12%) 등의 시장점유율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감소했지만, 삼성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에 34%에서 43% 수준까지 늘렸다.

또, 작년 4분기에 전 세계 주요 메모리반도체 업체는 모두 영업적자를 기록했지만, 삼성은 혼자서 전년 동기보다 30%가량 늘어난 2조3천억원의 흑자를 달성했다.

이처럼 삼성은 치열한 치킨게임에서 승기를 잡은 경험을 살려 앞으로도 어떤 경쟁자가 나타나더라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쟁우위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의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경쟁사를 압도하는 투자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놨기 때문에 앞으로도 과감히 투자한 만큼 수익을 내는 선순환구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삼성의 관심은 '메모리보다 비메모리' = 이처럼 메모리 부문에서는 이미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삼성의 관심은 오히려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부문에 쏠려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반도체 수요 기반이 PC에서 모바일 기기로 급격히 넘어가면서 전 세계 비메모리 시장은 이미 전체 반도체 시장의 80%를 차지할 만큼 커졌다.

또, 앞으로 성장 가능성도 여전해 IT업계 시장조사 업체들에 따르면 2014년까지 메모리 시장 성장률은 연평균 1.3%에 그치지만, 시스템 반도체 성장률은 5.8%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삼성의 경우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각종 스마트 가전을 직접 생산하고 있어 시스템 반도체의 수요처를 확보하는 데도 유리한 상황이다.

실제로 삼성은 스마트폰 판매가 급증하면서 AP(스마트폰 용 CPU)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그 결과 지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전체 반도체 매출 중 5% 수준이던 시스템 부문 비중이 지난 2010년에는 32%, 작년에는 39% 수준까지 급상승했다.

이처럼 시스템 반도체 사업의 성장성이 두각을 보이자 삼성은 이 부문을 키우는 데 더욱 집중하면서 국내외 플래시 메모리 생산라인을 대거 시스템 라인으로 전환하고 있다. 또,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메모리보다 비메모리 부문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로 하면서, 투자규모도 작년보다 2배 늘어난 8조원 수준으로 책정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엘피다 파산으로 메모리 부문에서 일부 재편이 예상되지만, 삼성은 이미 압도적인 지위를 확보한 만큼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삼성의 관심은 메모리보다는 새로운 시장인 비메모리 부문에 더욱 쏠려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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