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삼성그룹의 영원한 숙제처럼 남겨 있던 삼성에버랜드(이하 에버랜드) 지분 처리 문제가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 19.34%를 보유하면서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고 후계 구도와도 맞물려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위를 가진 핵심 기업이다.

문제는 금융회사의 일반회사 지분 5% 이상 보유를 금지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라 삼성카드가 보유중인 에버랜드 지분 25.64%를 이달 말까지 처분해야만 했던 것.

일단 삼성그룹은 지난해 JP모건과 골드만삭스를 주관사로 내세워 이 가운데 17%를 KCC에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삼성카드가 보유해도 되는 5%를 제외한 나머지 3.64%를 추가로 매각해야 하는 문제를 남겨둔 상태였다.

17일 삼성그룹 등에 따르면 최근 이 잔여지분을 에버랜드가 자사주 형태로 취득하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신세계와 한솔, CJ그룹 등 범삼성 기업들이 보유중인 지분까지 자사주로 취득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현재 신세계가 0.08%, 한솔케미칼과 CJ가 각각 0.5%와 2.35%의 에버랜드 지분을 갖고 있다.

에버랜드 지분 처리 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최근 신세계와 한솔케미칼, CJ는 물론 4.25%의 지분을 보유중인 한국장학재단에도 지분 매각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관사까지 선정해 지분 매각에 나섰던 삼성그룹이 급작스럽게 자사주 취득으로 방향을 튼 것은 개정 상법이 든든한 우군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지난 15일부터 시행된 개정 상법에서는 비상장사의 자사주 취득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다른 주주에게도 동일한 조건으로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신세계 등 범삼성 기업들에게도 지분 매각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삼성카드 보유 지분 문제를 처리하는 참에 범삼성 기업들의 지분까지 가져오고자 하는 생각이 강하다. 에버랜드 지분 관계를 보다 깔끔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25.10%로 최대주주이며 KCC가 17%로 2대 주주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각각 8.37%씩 갖고 있고,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4.10%, 삼성전기와 삼성SDI, 제일모직이 4%씩 보유중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3.72%, 삼성물산과 삼성문화재단이 0.90%, 고 이병철 회장의 넷째 딸 덕희씨의 장녀인 이유정씨가 0.50%를 갖고 있다.

삼성그룹은 범삼성 기업들의 지분을 취득함으로써 에버랜드를 주요 계열사와 오너가 일가를 중심으로 에버랜드의 지배구조를 한층 간결하게 만들수 있게 된 셈이다.

만일 에버랜드가 자사주로 지분을 취득해 소각할 경우 현재 최대주주로 있는 이재용 사장의 지분율은 올라가게 된다. 지배력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위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오너 일가의 지분율 증가 효과까지 톡톡히 노릴 수 있는 것이다. 개정 상법 삼성그룹 오너 일가에 날개를 달아준 것과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한국장학재단이 보유중인 4.25%의 매각 입찰을 '훼방' 놓으면서까지 에버랜드의 주식 가격이 오르는 것을 막는데 성공했다.

'기업공개(IPO) 계획이 전혀 없다'는 말 한마디로 뜨겁게 불붙었던 강남부자들의 마음을 돌려 놓아 장학재단의 입찰이 무산되는데 '혁혁한 일조'를 했다.

당시 예비입찰에서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제시했던 에버랜드의 주당 인수가격은 213만원(가중평균)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시장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데 실패하면서 삼성그룹은 KCC에 매각했던 주당 182만원의 주가로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개정 상법 '한방에' 지분 문제를 처리할 수 있게 됐고, '소각 카드'로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끌어 올려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으며 싼 가격으로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는 명분도 얻게 된 것이다.

한편, 삼성그룹은 개정 상법을 활용해 계열사간 소규모 합병 등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들도 솔솔 제기되고 있다.

현대증권 전용기 연구원은 "삼성SDS를 IPO 하지 않고도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부문 강화를 위해 소규모 합병으로 삼성SDS를 합병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SDS의 지분을 이재용 사장이 8.81% 보유하고 있는데 삼성전자와의 합병이 이뤄진다면 이 사장의 지배력은 더욱 높아질 수 있게 된다는 게 전 연구원의 설명이다.

pisces738@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