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사업 조정·시너지 창출 차원 재편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핵심 계열사 지배력 강화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재영 기자 = 삼성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키로 한 것은 중복 사업 조정과 비주력 사업 정리,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 차원에서 진행돼 온 그룹 사업구조 개편 작업의 일환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26일 이사회를 열어 양사 간 합병을 전격 결의했다. 합병 비율은 1대 0.35로,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방식이다. 합병 법인의 사명은 삼성물산으로 결정됐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뿐 아니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까지 삼성그룹 건설 계열사 간의 사업구조 개편은 재계에서 그간 끊임없이 제기돼 온 이슈다.

건설 부문의 재편 작업은 이재용 부회장 체제를 맞는 삼성이 금융과 화학, 전자 계열사에 이어 그룹 차원에서 벌이는 사실상 마지막 '퍼즐'로 예상돼 왔다.

실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합병을 추진했지만 주주들로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돼 실패한 바 있다.

중공업과 엔니지어링 합병 실패 이후 재추진설을 비롯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부분 합병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제일모직은 패션부문과 건설부문, 레저부문으로 나뉘어 있는데, 건설부문의 플랜트 사업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플랜트 사업과 일부 중복된다.

이 때문에 당초 시장에서 예상했던 것은 제일모직의 건설·리조트 사업과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합병할 것이라는 부분 합병 추진이었다.

하지만 예측과 달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전사 합병을 결정한 것은 비단 건설 부문의 사업재편뿐 아니라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모든 사업을 묶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삼성이 "상사 부문에서 제일모직의 패션과 식음 사업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 것이 이러한 맥락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삼성물산 상사부문의 경쟁력을 제일모직 패션과 급식, 식음 사업을 활용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제일모직은 식음 사업을 벌이는 삼성웰스토리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신수종 사업으로 키우는 바이오 사업에 대해 흩어진 지분도 한 데 모으는 효과도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각각 46.3%와 4.9%씩 보유하고 있는데, 양 사 합병을 통해 지분율을 50% 이상으로 올라 지배력이 강화된다.

삼성은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 사업의 최대주주로 적극 참여할 수 있어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단순히 사업 차원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룹 지배구조와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 상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에도 변동이 생긴다.

우선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을 통한' 실질적인 간접 지배력이 강화된다. 그간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0.6%의 소수 지분율만으로 삼성전자의 경영을 사실상 이끌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삼성전자 등기이사도 아닌 이 부회장이 지분율 0.6%로 실질적인 경영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이 부회장은 합병 법인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하고 있는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인 1대 0.35를 적용하면 합병 법인 삼성물산 지분율은 16.5%로 낮아진다. 이 부회장의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된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의 지분율도 합병 비율에 따라 기존 7.8%에서 5.5%로 줄어든다. 이 부회장 등 그룹 3세와 오너 일가의 합병 법인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율은 30.4%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이 부회장은 합병 법인인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간접 지배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에 이어 삼성전자 지분 4.1%을 보유한 2대 주주가 되고, 삼성생명 지분도 19.3%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물산→제일모직으로 연결되는 순환출자고리도 끊어진다.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지분 19.3%를 보유해 이건희 삼성 회장(20.8%)에 이은 2대 주주고 삼성생명은 삼성물산 지분을 0.2% 보유하고 있다. 또다시 삼성물산은 제일모직 지분을 1.4% 보유하고 있는 구조였다.

이외 제일모직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기, 삼성카드, 삼성SDI 등 계열사에 대한 지분 변동은 없다.

앞서 제일모직 상장 때 삼성카드는 보유하고 있던 지분(5%) 전량을 구주매출로 처분해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제일모직 고리가 끊어진 바 있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 3세들이 지분을 38% 보유해 지배구조 정점 역할을 해왔던 제일모직 사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삼성 관계자는 "제일모직 사명에 대해서는 보존 조치를 해 타법인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고, 향후 어떻게 활용될지는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jy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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