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전직 금융통화위원회 위원과 학계 교수 등은 국내 금통위원 추천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이익집단의 금통위원 추천제도의 존속 여부를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뿐 아니라 사실상 임명권자의 의사가 가장 우선시되는 현행 관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금통위원, 정권 입맛대로..전문가들 인정 못 받는다"= 전직 금통위원과 학계 교수 등은 공통적으로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현행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통위원 선임이 사실상 임명권자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데 따라 독자적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일부 금통위원들이 학계 등의 존중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겉으로는 금융위원회나 기획재정부, 은행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의 추천을 받는 형태를 갖춰놓고 있지만, 사실상 임명권자의 의사대로 금통위원들이 선임되는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이라며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금통위원을 임명하다 보니 전혀 자격 조건이 안되는 인사들이 금통위원이 되고, 이에 따라 금통위에 대한 학계 등 전문가 집단의 존중감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한은의 독립성이 강화돼야 한다"며 "사실상 정부가 주도하는 금통위 제도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현재 금통위 제도가 이익집단의 추천을 받아 금통위원을 선임하게 되어 있지만, 통화정책이라는 근본 목적에 부합 하다고 할 수는 없다"며 "통화정책은 대표적으로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 분야인 만큼 금통위 제도뿐 아니라 운영 행태를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금통위원은 "근본적으로 임명권자가 금통위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적합한 인물들을 선택해야 한다"며 "특정 집단의 추천을 받은 금통위원들도 금통위 본회의 과정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지만, 각 업계를 대변한다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독자적 임명권에 견제 장치 있어야"..한은 총재 역할론도 대두=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친 금통위원 선임제도를 제안했다. 최종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인사 방식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금통위원의 일정한 자격 요건들을 규정한다는 가정 하에 여야 국회의원들의 추천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은 부총재 출신의 이승일 전 금통위원은 "금통위원을 선임하는 데 있어 이익집단의 추천을 받는다고 해서 해당 인사들이 추천 집단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국내 금통위가 이런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존속 필요성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통위원 선임에 있어 대통령의 임명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대표기관이라 할 수 있는 국회 청문회 등의 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다만 여야 좌석 비율 등에 따른 추천 제도는 정치권의 또 다른 '나눠먹기'식의 병폐를 부를 수 있다"며 "금통위의 정치적 독립성도 훼손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성인 교수는 "사전에 금통위원의 자격 기준을 엄격하게 정의한 뒤 여야가 의석 비율에 따라 추천권을 행사하고, 임명은 대통령이 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금통위가 상당한 중책을 맡고 있는 만큼 청문회까지는 아니어도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표학길 교수는 "7명의 금통위원 중 2명은 대통령 임명, 2명은 한은 총재와 부총재, 나머지 3명은 국회에서 여야가 추천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분명한 점은 현재와 같이 금통위원의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독자적 목소리도 내기 힘든 최악의 상황을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김중수 한은 총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견해도 이어졌다.

전성인 교수는 "현재 한은은 금융안정이란 책무까지 짊어진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더욱 종속될 위험에 처해있다"며 "금융안정을 위해 물가안정을 일부 희생하라는 식의 압력이 들어올 수 있는 만큼 김중수 총재의 역할도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물가가 불안하고 대외적 불안요인도 산재한 지금이야말로 한은의 신뢰성이라는 사회적 자본이 필요한 때"라며 "물가 보루가 튼튼하면 금통위가 어떤 정책결정을 내리더라도 국민들은 신뢰를 보낼 것"이라고 조언했다.

ywkwon@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