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황병극 엄재현 기자 =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BOJ) 총재가 엔화 약세에 부정적인 발언을 내놓은 가운데 서울외환시장도 일본의 외환정책 변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엔저 용인파로 평가됐던 구로다 총재가 추가적인 엔저에 부정적인 뜻을 보인 데다, 구로다 총재의 발언에 앞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엔저와 강달러를 우려했다는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미국과 일본이 정책공조에 나선 게 아니냐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일본이 엔저를 골자로 하는 외환정책에 변화를 꾀했다기보다는 가파른 엔저에 대한 속조조절 필요성과 미국에 대한 정치적인 배려 등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 미일의 정책공조…강달러·엔저 속도조절

서울환시 전문가들은 구로다 총재의 발언이 나온 배경으로 가파르게 전개된 강달러와 엔저를 꼽았다. 미국과 일본 모두 환율 속도조절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구로다 BOJ 총재의 엔저 경계 발언이 나오기 직전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강달러에 대한 우려 발언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1일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주말 강달러가 문제라는 발언으로 외환시장에 작지 않은 충격을 미쳤다"며 "동시에 아베 총리와 구로다 총재가 잇따라 엔저 경계 발언을 함으로써 양국이 환율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증폭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이례적인 환율 발언은 강달러에 대한 미국의 우려감이 반영된 동시에 한편으로는 미국 의회, 특히 민주당의 반대로 교착상태에 빠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타결을 위한 교감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구로다 총재의 발언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이 강달러에대한 우려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실제 강달러가 미국의 제조업에도 좋지 않은 만큼 일정부분 일본의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 딜러는 "일본도 달러-엔 환율이 지나치게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며 "구로다 총재의 발언은 일본 외환정책의 기조전환보다는 가파른 엔저에 대한 속도조절과 미국와 일본의 정치적인 포석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 가파른 엔저 부담도 한몫

일본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는 상황에서 투기세력까지 가세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과도한 엔저에 대한 우려감이 작용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최근 일본 내부에서도 엔저현상 등으로 대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누리는 것과 달리 중소기업들은 원자재값 상승와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딜러는 "최근 달러-엔 환율이 122엔을 뚫고 과도하게 상승한 측면이 있다"며 "더욱이 투기세력까지 가세하면서 엔저가 심화될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었던 만큼 일본도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최근에는 일본 경제단체 중에서 과도한 엔저 현상에 대해 우려감을 표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시중은행 딜러는 "달러-엔 환율 125엔까지는 괜찮았겠지만, 헤지펀드가 엔저에 베팅한다는 얘기가 들리고 달러-엔이 130엔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확산되면서 구로다 총재가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그는 "달러-엔 환율 상승의 경제적, 외교적 득실을 따져봤을 때 급격한 엔저로 일본이 얻을 게 많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 나라의 중앙은행 총재로서 구로다 총재가 환율에 대해 이렇게까지 발언하는 것은 다소 비상식적이지만, 그만큼 현재의 엔화 가치에 대해 교통정리가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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