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롯데그룹은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무서운 기세로 기업들을 사들였다.

이러한 모습은 신동빈 회장이 2004년부터 정책본부장(부회장)을 맡으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신 회장을 보좌하며 그룹내 인수ㆍ합병(M&A)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황각규 정책본부 사장(국제실장)의 책상에는 항상 수십 개의 M&A 매물이 올라와 있다.

최근에는 하이마트와 전자랜드, 웅진코웨이 인수전의 유력 후보군 리스트에 '롯데'라는 이름을 올렸다.

이렇듯 공격적인 M&A에 나서고 있는 롯데그룹이지만 고민도 적지 않다.

피인수 기업, 특히 해외 법인이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분법 손실이 이익을 갉아먹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짠돌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답게 다른 대기업과의 M&A 경쟁에서도 신통치 않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M&A 자문사 실적, 롯데에게 물어봐' = 2008년부터 집계한 연합인포맥스 리그테이블 자료를 보면 롯데그룹은 M&A 건수에서 국내 대기업 집단 가운데 단연 최고다.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아웃바운드 크로스보더 딜(outbound cross-border)'도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대한화재와 비비카(베트남), 두산주류BG, 코스모투자자문(지분), 마크로(중국ㆍ인도네시아), 길리안(벨기에), 산정음료ㆍ창대통상, 푸드스타, 데크항공, 삼박엘에프티, 헤븐랜드CC, 타임스(중국), 코랄리스(룩셈부르크), 마이비, 기린식품, 해태음료 안성공장, AK면세점, 타이탄(말레이시아), 바이더웨이, GS스퀘어ㆍ마트, 파스퇴르유업, 삼안, 버거킹(일본), 현대정보기술, 이비카드, 콜손(파키스탄), PCPPI(필리핀), 럭키파이(중국), 엔씨에프, 씨에스유통, 충북소주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일부 부동산과 100억원 미만의 딜, 자문사 없이 자체적으로 인수한 곳까지 포함하면 가히 '측정불가'라 할 만 하다.

최근에는 그랜드마트의 영통점과 계양점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자칫 무분별한 확장처럼 보이지만 롯데그룹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계열사의 부채비율이 100%에 훨씬 못미치는데다 차입금의존도도 10%대에 그칠 정도로 재무구조가 우량해서다.

차입금이 수년간 M&A와 투자로 늘어나는 추세고 실적의 등락도 있으나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으로 인수 '흔적'을 비교적 빠르게 없애고 있다.

재무구조와 신용도가 좋다 보니 시장 접근성도 뛰어나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리는 것도 자유롭다.

그러나 롯데그룹도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풍부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대기업과의 M&A 경쟁에서는 번번이 밀리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2009년 오비맥주,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 2011년 마타하리(인도네시아)와 대한통운 등 당시 M&A 시장의 메가딜로 평가됐던 기업들의 인수전에서는 모두 고배를 마셨다.

높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인수해 '승자의 저주'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평가도 있지만, 과감한 승부를 펼칠 줄 모른다는 지적도 감내해야 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 중에서 롯데의 M&A 실적은 단연 톱 수준"이라면서도 "그러나 대형 딜, 특히 가격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딜에서는 유독 약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정확한 밸류에이션 측정도 중요하나 때로는 과감한 베팅도 기왕 M&A로 확장하려는 기업에는 중요한 요소"라며 "그런 면에서 롯데가 하이마트와 웅진코웨이의 유력한 인수후보라는데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룹의 중심 롯데쇼핑, 집안정리 빨리 끝내야 할텐데 = 롯데쇼핑이 인수한 국내 법인들의 실적은 비교적 양호하다.

2006년 12월에 인수한 우리홈쇼핑과 2010년 4월에 사들인 바이더웨이, 2010년 12월에 편입한 엔씨에프 등은 지난해 각각 874억원과 220억원, 4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나타냈다.

그러나 롯데쇼핑이 2010년 5월에 1천5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이비카드는 353억원의 매출액에 6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다.

M&A와 설립을 통해 편입한 해외 법인들은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0년 7월에 인수한 중국의 홈쇼핑업체 럭키파이와 그 외 15개사는 지난해 741억원의 매출액에 무려 13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2009년 10월에 사들인 중국 할인점 타임스는 소폭 흑자를 내고 있으나 다른 지점들의 실적은 여전히 부진하다.

2008년 10월에 마크로(중국 포함)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장한 인도네시아 법인들 중 'PT. Lotte Shopping Indonesia'를 제외하고 'PT. Lotte Mart Indonesia'와 'PT. Lotte Shopping Plaza Indonesia'는 각각 137억원과 15억원의 적자를 봤다.

다만 당기순손실 폭이 감소 추세에 있다는 점은 롯데그룹에 그나마 위안거리다.

롯데그룹은 그간 과식을 하느라 속이 더부룩해 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건강을 회복하면서 본격적인 효자 노릇을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용평가사의 관계자는 "해외 법인들의 당기순손실이 매년 반복되고 있지만 손실폭이 줄고 있고, 국내 계열사들의 지분법 이익이 증가하면서 상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매장 수를 추가로 확보하고 영업이 본격화하면 해외 부문이 성장 동력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다른 계열사도 사정은 비슷 = 롯데칠성음료는 M&A를 통해 기업을 인수하면 대부분 흡수합병하는 과정을 거쳤다.

연결대상 기업 중 지난해 5월에 인수를 완료한 충북소주는 사업결합일 이후 10억원 가량의 당기순손실을 나타냈다.

생수생산업체인 창대통상과 산정음료를 흡수합병한 씨에치음료도 15억원의 적자를 봤다.

2010년 10월에 인수한 필리핀 펩시(PCPPI)도 지분법 손실로 회계처리됐다.

롯데제과는 2009년 말 인수한 기린식품이 27억원, 2010년에 인수한 파키스탄의 콜손(지분 보유 K.S. SULEMANJI ESMAILJI & SONS(Private) Limited)이 1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보이는 등 중요 연결대상 종속기업 8개 중 6개가 적자 상태다.

2007년과 2008년에 인수한 베트남의 비비카와 벨기에의 길리안 등의 지분을 보유한 현지 법인들도 여전히 지분법손실로 잡혔다.

롯데삼강의 경우는 2005년 인수한 웰가가 흑자 기조를 보이고 있으나 2010년 인수한 파스퇴르유업은 지난해 흡수합병 전까지 소폭의 적자를 냈다.

2008년 초 인수한 롯데손해보험(구 대한화재)은 해마다 적자와 흑자를 반복하면서 안정적이지 못한 경영실적을 보이고 있다.

2008년 하오기술, 2009년 ㈜삼박과 삼박엘에프티, 2010년 타이탄과 데크항공 등을 인수해 롯데다운 식욕을 과시한 호남석유화학도 희비가 엇갈린다.

수조원의 자금을 들인 말레이시아의 석유화학기업인 타이탄과 섬유복합재 생산기업인 삼박엘에프티는 지난해 견조한 실적을 냈으나, 하오기술과 ㈜삼박, 데크항공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물론, 한 식구가 된 지 오래되지 않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M&A 시너지는 중장기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M&A가 지나치게 확장 위주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로펌의 M&A 전문 변호사는 "LG생활건강이 인수한 이듬해 해당 기업을 흑자로 전환하는 것을 보면 정확한 계획하에 인수하는 것이 중요한데, 롯데그룹은 일단 시장 진출과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먼 미래를 보고 적자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으나 기존 사업에 빠르게 녹이지 못하거나 조정을 하지 못한다면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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