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다정 기자 = 결국 돈과 시간 부족이었다.

SK하이닉스가 세계 3위의 반도체 D램 업체인 일본의 엘피다를 인수하려던 계획을 접은 결정적인 이유로 꼽히고 있다.

SK그룹으로 피인수되면서 확보한 3조원의 실탄을 엘피다에 모두 쓰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 4일 오전 10시 대치동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상당 수의 이사들이 재무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의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엘피다의 부채가 6조원을 넘어 엘피다를 인수하더라도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호 코퍼레티트센터 총괄 부사장은 연합인포맥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엘피다의 재무 상황을 들여다 보니 당장 들어가기에는 조심스러웠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SK하이닉스는 엘피다의 과도한 부채를 떠 안고 인수하기에는 자력으로는 힘들다고 봤다.

따라서 전략적 제휴를 하건,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 들이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예비입찰을 앞두고 도시바가 SK하이닉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하자는 제의를 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도시바는 결국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의 김정수 IR담당 상무는 "수조원이 들어가는 딜인데 지금 당장 들어가기에는 시간과 정보가 부족했다"고 전했다.

그는 "리스크가 상당하기 때문에 다른 곳과 제휴할 것을 모색했지만 합의에 도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가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란 추정은 이미 감지돼 왔다.

김준호 부사장은 지난달 26일 1분기 실적발표 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현재 3조4천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엘피다 인수에 추가로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 없다"면서 재무적으로 가용한 범위 안에서만 투자를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엘피다를 인수한다고 가정했을 때 두 기업의 재무상태를 단순 합산하면 순차입금은 4조9천억원에서 9조2천억원으로 88%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또 총부채는 9조4천억원에서 16조5천억원으로 76.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본입찰 참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의외로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예비입찰에 참여해 실사를 진행했고 그로 인해 엘피다의 정보를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소기의 소득을 얻었으니 본입찰에 참여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사회에는 최 회장을 비롯한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5명이 모두 참석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사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전략적으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데 전략적으로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더 이상 인수 추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SK하이닉스가 이날 엘피다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중국의 호니캐피털ㆍ미국의 TPG캐피털이 합작한 중ㆍ미 연합펀드가 본입찰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dj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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