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종혁 김대도 기자 = 최근 몇 년간 해외 플랜트 수주가 급증했지만 국내 대형 건설사에 플랜트 기계장치를 납품하던 중견기업 '일성'은 지난 3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예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07년부터 5년간 연평균 2천억원씩 수주해온 일성이 2011년에만 매출액의 60%에 육박하는 1천23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더는 회사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경영상태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플랜트업계와 금융권의 전문가들은 9일 영업상 문제가 없었던 일성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에 대해, 국내 건설사의 해외 플랜트 수주 호황 속의 구조적 모순과 경영진의 오판이 합쳐진 결과라고 진단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일성' = 일성의 수주액 급증은 국내 건설사의 해외 플랜트 수주 증가세와 일치한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따낸 해외 산업설비(플랜트) 수주액은 2006년 109억달러에서 2007년과 2008년 252억달러와 268억달러로 한 단계 도약했다. 이후 2009년 354억달러, 2010년 572억달러로 다시 한번 점프한다.
이에 맞춰, 일성도 2006년 1천190억원이던 신규 수주액이 2007년 1천703억원, 2008년 2천582억원, 2009년 1천804억원, 2010년 3천52억원으로 급증한다.
특이점은 과거 해외 수주 비중이 높던 일성이 이 시기에는 국내 대기업 비중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점이다.
일성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에스건설, 현대건설, 대림산업, SK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대우조선해양 등의 대기업으로부터 따낸 신규계약 비중이 2007년에는 9%에 불과했지만 2008년 11%, 2009년 13%로 서서히 늘다가 2010년 39%로 급등한다.
2010년말 계약잔액 기준으로는 국내 대형사 비중이 60%에 육박한다.
▲'풍요 속 빈곤'..저가 수주의 모순 = 전문가들은 플랜트산업 호황과 함께 일감이 넘치던 일성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배경에는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해외 플랜트를 저가 수주한 여파가 큰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기업인 대형 건설사가 플랜트를 예정가의 60% 수준으로 수주한 탓에 도미노식으로 기자재 공급업체의 마진이 대폭 줄고 급기야 적자수주도 했다는 설명이다.
일성의 장세일 전 회장도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 배경으로 대기업의 저가수주 부작용이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실제 일성의 2011년 재무제표를 보면 매출액이 2천139억원인데 비해 제품매출원가가 3천59억원에 달해, 큰 폭의 당기손실을 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강조하는 상생이 플랜트 업계에는 잘 맞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저가 수주를 해온 대기업이 납품업체를 최저입찰제로 선정하다 보니 일성의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성 경영진의 '오판'도 한 요인 = 최근 일성의 지분을 사들인 투자자들은 기존 경영진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성은 작년 5월 신한금융투자, IBK 등 국내 증권사들이 주축이 돼, 운용하는 두 곳의 사모펀드(PEF)로부터 500억원의 지분 투자를 받기도 했다.
투자자들은 수년 안에 일성의 기업공개(IPO)를 가정하고 차익실현을 목표로 투자에 참여했지만 1년도 안 돼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에 대해 분식회계 등 심각한 경영상 잘못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성의 발주처였던 대형 건설사들도 무리한 저가수주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A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최저입찰제는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는 일반적인 제도"라며 "무리한 수주에 따른 부실 경영 책임은 해당 회사에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경쟁 업체가 많은 데다 대기업에서 수주를 않게 되면 나중에 일감 확보가 힘들다는 눈치 보기가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적자를 알면서도 왜 무리하게 수주를 늘린 것인지는 경영진이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liber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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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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