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기자 = 5월 금융통화위원회가 10일 정례회의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11개월 연속으로 동결한 것은 경기와 물가 전망을 둘러싼 딜레마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은 국내와 국외가 다소 엇갈리는 모습이다. 국내 경제는 회복세가 일시적으로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며 장기 회복 추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반면에 미국 경제는 완만하게나마 회복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물가지표는 올해 들어 하향 안정화되는 흐름이다. 하지만, 기저효과와 정책효과가 반영된 결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3% 후반대의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고려할 때 인플레 심리가 여전히 너무 높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나오고는 있지만, 실제 인하에 나설 경우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성장과 물가안정 유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통화당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위험이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리는 등 명확한 시그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현재의 기준금리에 변화를 주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금통위에서 금리인하에 대한 토의는 없었다"며 "기존의 금리정상화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엇갈리는 대내외 경기지표 = 국내 경제는 회복세가 일시적으로 둔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3월 산업활동동향은 내수와 수출의 동반부진으로 대부분 지표가 전월 대비로 악화됐다. 광공업생산은 지난달보다 3.4% 줄었고, 소비지표인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2.7% 줄었다. 특히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7.0%나 감소했다.

지난해 11월 상승 반전한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3월 들어 보합세로 내려앉았고,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전월차 역시 지난 2월의 짧은 반등을 끝내고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4월 무역수지도 22억달러 흑자에 그쳐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발표된 여러 지표를 보면 경기 회복세가 주춤한 느낌"이라며 "2월~3월 초순 정도까지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나 했으나 3월 중순 이후 힘이 부치는 듯한 느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미국의 경제지표는 회복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4월 민간고용이 11만9천명 증가로 전월보다 크게 낮아지며 둔화되는 양상을 보였으나 ISM 제조업지수는 전월보다 1.4%포인트 상승하는 호조세를 나타냈다.

국내 경기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경기 상방과 하방 요인이 상존해 통화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물가지표 안정에도 인플레 경계심리 여전 = 물가지표는 하향 안정 추세지만, 인플레에 대한 경계심리는 지속되고 있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5% 상승해 지난해 12월 4.2% 상승 이후 4개월 연속 상승률이 둔화됐다. 근원소비자물가도 1.8% 상승에 그치며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전반적인 물가상승 압력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표와 체감물가 간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게 문제다. 일반인의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3% 후반대에 머물러 있다.

하반기 이후로는 경기 회복 기조에 따라 수요 측면에서의 인플레 압력이 가중돼 비교적 높은 수준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반영해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치로 기존의 3%대 초반을 유지했다. 지난해 말 예측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예상치인 3.3%를 낮출만한 요인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반기 금리인하 단행될까 = 대내외 경기에 대한 엇갈린 시각과 인플레 우려가 충돌해 통화당국이 그동안 강조했던 금리 정상화 작업은 지연되고 있다.

금통위가 기존의 금리정상화 기조를 철회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에 머물고 있어 기준금리 3.25%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도 금리정상화 작업을 포기하기 어렵다.

지난 3월 금통위 의사록에서는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정착(anchoring)시킴으로써 물가 상승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이 통화정책의 가장 큰 당면과제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경기와 물가의 상반된 행보 속에 당분간 통화당국의 금리정책 운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같은 이유로 올해 금통위에서는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 외에 새로운 정책수단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금통위의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금통위가 불안한 대외경기 여건 속에서 금리정책에 대한 관망세를 이어갈 것이란 예측이다.

그러나 하반기 중 1~2차례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유로존 재정위기 지속 등 대외 요인으로 국내 경기의 하방 압력이 높아진 가운데 신임 금통위원들의 비둘기파적인 성향까지 가세해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상보다는 인하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의견들이다.

김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 충족 조건에 대한 질문과 관련, "금통위에서 논의하지 않은 사안을 가상으로 만들어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기회가 되면 검토해볼 수 있겠지만, 어떤 조건이 되면 금리인하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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