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이제 인생의 가장 큰 승부수를 대우조선해양에 걸고 있다. 장차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글로벌 사업포트폴리오의 핵심축으로 삼기 위한 최적의 대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도가 거세지던 2008년 11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 가운데 한 구절이다.

김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되면서 한화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대우조선의 새 주인이 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거대한 장벽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다 인수를 포기해야 했다.

한화그룹 내부에서도 조선업을 '미래 성장동력, 사업포트폴리오의 핵심 축'으로 보는 시각은 사라졌다. 오히려 "잘 됐다"는 안도감만 더 커졌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 인수 실패 이후 인수ㆍ합병(M&A) 시장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공격적인 투자에서 '내실 다지기'로 돌아섰다. 금융위기 여파에 기업들을 옥죄던 서슬퍼런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가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안간힘이었다.

그러던 한화그룹이 본격적인 M&A 행보에 나선 것은 2010년부터다.

4천900억원을 들여 푸르덴셜투자증권(현 한화투자증권)을 인수한 데 이어 세계 4위의 태양광모듈 생산업체인 솔라펀파워(현 한화솔라원)를 4천341억원에 인수했다.

두 기업의 인수는 한화그룹의 앞으로 사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중요한 포인트다.

대한생명과 한화증권, 한화투자증권 등을 중심으로 한 금융사업과 한화석유화학, 한화케미칼, 한화솔라원을 축으로 한 에너지사업을 그룹의 양대 먹거리로 삼겠다는 신호로 볼 수 있어서다.

특히 한화솔라원이 중심이 된 태양광사업은 한화그룹의 최대 신성장동력으로 꼽히고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솔라원 인수 이후에도 중소 규모의 관련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인수하는 등 수직계열화를 위한 작업을 계속해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태양광 산업이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화그룹의 이러한 공격적 투자가 결실을 거둘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태양광에 '올인'하는 황태자 'DK차장님' = 2010년 1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씨가 군복무를 마치고 26세의 어린 나이에 회장실 차장으로 입사했다.

후계 승계에 앞서 경영수업이 본격화한 것이란 신호였다. 한화그룹 내부에서는 그를 'DK차장님'으로 불렀다.

김동관 차장은 한화그룹이 조심스럽게 추진하던 태양광사업에 깊숙이 발을 들여 놓기 시작했다. 한화케미칼이 솔라펀파워를 인수할 당시에는 관련 회의에 직접 참여해 자신의 의견과 전략을 피력할 정도였다.

결국, 한화케미칼은 솔라펀파워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고, 본격적인 영토확장에 나섰다.

2010년 10월에는 미국의 태양광 기술 벤처인 1366테크놀로지 지분을 인수하고, 작년 9월에도 역시 미국의 태양광기술 벤처인 크리스털솔라 지분을 인수했다.

미국의 솔라몽키와의 전략적 제휴, 한화솔라에너지 설립, 미국 실리콘밸리에 태양광 연구소를 개소하는 등 불과 2년 만에 속도감 있게 태양광 사업을 밀어붙였다.

한화그룹에서 '태양신'으로 불리는 'DK차장님'의 통 큰 행보의 결과물들이다.

김 차장은 지난해 12월에는 '차장' 직함을 떼고 한화솔라원의 기획실장으로 부임해 태양광 사업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그룹 내외부에서의 평가는 엇갈린다. 특히 태양광산업의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 한화솔라원은 적자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화솔라원은 11개 종속기업을 포함한 연결기준으로 작년에 1천37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부채는 1조932억원으로 자본금 7천854억원을 넘어섰다.

외부 차입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홍콩법인이 신디케이트론 방식으로 1억8천만달러를 차입했다.

한화케미칼도 여수에 1조원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상당 규모의 자금을 차입하기도 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김동관 실장이 태양광 사업에 대한 확신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한화그룹 내부에서도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8일 보고서에서 "수직계열화 또는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한 업체는 중기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존 또는 도태의 갈림길에 설 것"이라며 "앞으로 2∼3년간 태양광 업황 약세와 이에 따른 구조조정 양상은 지속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오너 리스크'의 대표작 증권 계열사 합병 =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한 이후 가장 큰 금융사 M&A로 꼽히는 푸르덴셜투자증권 인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화투자증권으로 법인명을 고치고 나름대로의 시너지 확대를 위한 사업교류가 진행됐지만, 여전히 합병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화증권은 2010년 2월 푸르덴셜증권과 푸르덴셜자산운용을 인수하면서 한화증권과 한화자산운용과 합병해 증권업계에서 자본금 기준 11위, 고객자산 기준 9위, 지점수 3위의 대형 증권사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운용업계에서는 5위로 점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합병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한화자산운용과 푸르덴셜자산운용과의 합병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성사됐지만 증권사 간 합병 결정은 최근에야 이뤄졌다.

한화증권은 내달 20일 주주총회를 열어 7월23일을 기일로 해 합병을 할 계획이다. 현재 금융당국에서 승인 여부를 심사 중이다.

인수 이후 2년이 넘도록 합병이 어려웠던 것은 '오너 리스크'가 컸기 때문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승연 회장이 회삿돈 수천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월 불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되면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 회장은 지난 3월23일 보유 중이던 한화증권 지분 전량을 계열사인 한화타임월드에 넘겼다. 합병에 걸림돌로 작용해 왔던 것을 스스로 던진 셈이다.

김 회장의 지분 매각에 맞춰 한화증권은 금융당국에 합병 승인 신청서를 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다른 대형 증권사들이 지난해 말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확 늘려 IB사업을 확장하고 자산관리 부문의 영역을 확대하는 사이에 한화증권은 '기회비용'을 날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영토 확장 성공할까 = 한화그룹은 최근 대한생명을 통해 동양생명과 ING생명아태법인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공격적인 행보다.

대한생명 인수로 효과를 톡톡히 본 경험도 한 몫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의지도 강하다.

이미 한화그룹의 금융사업은 그룹 전체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생명보험사를 추가로 인수하려는 것도 그룹의 확장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한화그룹의 금융사업 확장은 대한생명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어 가능하다. M&A를 통한 외형확장도 필요한 전략 중의 하나로 긍정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돈이다. 수조원의 비용이 필요한 생보사 인수를 감당할 수 있는가에 생보는 물론 IB 업계의 의구심이 많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한생명이 한화그룹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어 충분히 감내할 능력을 갖췄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대한생명은 지난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 5천34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전년에 비해 23% 늘어난 수치다.

대한생명의 총 자산은 68조8천610억원으로 70조원을 앞두고 있다. 불과 2년 만에 10조원을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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