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유동성 풍부하기로 소문난 한국 금융시장에서 외국계은행과 외은지점들이 속속 짐을 싸고 있다. 규제 강화에 따른 신흥국에대한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딜링룸도 최소화하고 있다.인력 구조조정에다 국내 파생상품 영업을 줄이는 것도 더 이상 한국이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의미로풀이될 수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도이치은행은 금융시장과 투자은행(IB)관련 헤드급이 6명이 정직 처분을 받았고, SC은행은 딜링룸 내 부행장급을 비롯해 10여명의 헤드급을 줄였다. (연합인포맥스가 11월10일 송고한 '도이치뱅크 서울지점, 시니어급 정직처분…IB 철수설 '솔솔'', 11일 송고한 'SC은행 딜링룸 11명 축소…"헤드급 중심 감원"' 기사 참고)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은행은 이미 국내에서 철수하기로 하면서 지난달 직원들에게 퇴직 통보를 한 바 있다.

◇유럽계 외은지점, 'EMIR' 직격탄

최근 한국시장에서 떠나거나 몸집을 줄이는 은행들은 대부분 유럽계다. 유럽계은행들은 지난 2010년 유럽집행위원회에서 발표한 장외파생상품 규제에 관한 유럽시장인프라규제(EMIR)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이 규제에 따르면 표준화된 OTC파생상품 계약은 모두 중앙청산소를 통해 청산할 수 있는 방식이 돼야 하고, 보고의무가 생기며, 중앙청산소를 통해 청산하지 않은 계약은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자본규제를 받는다.

한국시장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규제의 영향으로 파생상품 거래를 줄이는 상황에서 딜링룸을 예전만큼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한 외국계은행 관계자는 " 규제가 심해지면서 유럽계 은행들은 거의 오퍼레이션만 남기고 철수하는 분위기"라며 "기업들 물량에 얹어서 하는 스펙 거래 등은 거의 할 수가 없어 FX트레이더가 필요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은지점 관계자는 "일부 프랑스계 은행도 딜링룸에서 트레이딩이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했고, 영국계인 바클레이스은행도 업무를 점차 축소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유럽계은행 철수가 RBS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韓금융시장, 수익 측면에서 먹을 것 없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예전만 못한 것도 외은지점들이 떠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아시아의 현금자판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유동성이 풍부한 한국 금융시장이지만 최근에는 경쟁 심하고, 마진이 박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한국이 의욕적으로내걸었던 '글로벌 금융허브'는 어느새 옛말이 됐다. 서울시가 '2015 서울국제금융컨퍼런스'를 지속해오면서 아시아계은행 유치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외은지점들은 국내 규제와 시장 여건은 더욱 팍팍해졌다고 지적했다.

한 미국계 외은지점 관계자는 "외국계은행들이 주로 IB나 M&A, 파생상품 쪽에 집중해 왔었는데 최근에는 국내 증권사들도 이 업무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심해졌다"며 "특히 M&A 수수료만 해도 호황일 때보다 반토막에 가까운 수준이라 한국 시장의 수익성이 좋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유동성 축소 대비해 '신흥국 리스크 재정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아시아 전체에 대한 위험 관리가 필요해진 것도 외국계은행 이탈에 한 몫했다. 돈을 무한정으로 풀던 미국이 돈줄을 죄기 시작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이 재차 경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시장은 수익률은 나쁘지 않지만 리스크가 큰 시장이다. 미국이 유동성 축소에 들어가는 시기인 만큼 신흥국에 대한 포지션을 줄일 필요가 있다.

한 외환당국 고위 관계자는 "외은지점들이 국내시장에서 본격적인 철수에 들어갔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며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글로벌 유동성이 줄어들 수 있으니 대부분의 신흥국에서 위험 관리를 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금리 인상 후) 개별 시장에 대한 재평가는 차츰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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