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매출액 2천605억원, 종업원 848명에 불과하던 파산 직전의 회사가 10년 만에 30조원 매출에 임직원 수가 5만명에 달하는 거대 그룹이 됐고, 그 사이 월급 사장이던 CEO는 재계 12위 그룹의 오너가 됐다."

STX그룹과 강덕수 회장의 얘기다.

이런 STX그룹의 성장 스토리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수·합병(M&A)이다.

쌍용중공업에서 시작해 지난 2001년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성장을 본격화했다.

그 후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2008년 아커야즈(현 STX유럽)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때마침 조선과 해운업의 호황이 겹치면서 STX그룹은 무섭게 성장했다. 이 덕분에 강 회장은 'M&A의 귀재'로 불렸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STX 신화'를 덮고 있던 거품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조선과 해운업에 집중된 사업구조는 오히려 독이 됐다. 주력 계열사의 실적이 눈에 띄게 저하되면서 그룹 전체의 자금흐름에도 빨간불이 켜졌고, 결국 재무개선에 나서야 했다.



◇강 회장의 M&A 전략..호황기에는 '선순환' = 지난 1973년 쌍용그룹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강 회장은 외환위기로 쌍용그룹이 해체된 2001년 퇴출 위기에 놓였던 쌍용중공업의 사장이었다.

그때까지 줄곧 샐러리맨으로 살았던 강 회장은 당시 처음으로 모험에 나서게 된다. 전 재산 20여억원을 털어 파산 직전의 쌍용중공업의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이후 그는 회사명을 STX로 바꾼 후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 인수에 나섰다.

강 회장의 전략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높인 후 증시 상장 등을 통해 투자금액 이상을 회수했고, 그 돈으로 또 다른 기업을 인수했다.

실제로 강 회장은 2001년 당시 대동조선을 인수하는 데 1천억원을 투자했지만, 2년 후 STX조선해양을 상장시키는 과정에서 총 1천100억원 가량의 투자금을 회수했다.

2004년 범양상선을 인수할 때도 4천200억원을 투입했으나 1년 후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시키는 과정에서 3천800억원을 받아냈고 2007년 국내 증시에 상장할 때 추가로 5천800억원도 거둬들였다. 두 배 이상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때마침 해운과 조선업 등이 호황기를 맞은 덕분에 STX는 M&A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투자금을 회수해 다른 투자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홍석준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STX그룹의 초기 성장전략은 '사업인수 설비투자 확대 및 기술확보 → 영업식적 개선 → 기업상장 → 추가 사업인수 및 신규투자 확대' 등 선순환 구조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호황 효과' 사라지자 초라해진 M&A 성적표 = 그러나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글로벌 경기가 악화되면서 STX그룹의 주력사업인 해운과 조선 업황이 크게 악화됐다. 당연히 선순환 고리도 끊어졌다.

실제로 2004년만 해도 1조5천379억원이던 STX조선해양의 매출(K-GAPP 연결기준)은 2008년에는 14조8천305억원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금융위기 여파가 본격화되면서 2009년 11조1천683억원, 2010년 8조9천113억원으로 매년 3조원 가량씩 줄었다.

영업이익도 2004년 525억원 적자에서 2008년 7천490억원까지 증가했다가, 업황이 악화되자 2009년 109억원으로 폭락했다. 이 때문에 2007년까지만 해도 8%에 육박하던 영업이익률은 2009년 0.1%, 2010년 1.4%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작년에는 IFRS 연결 기준으로 매출과 영업익이 11조962억원, 5천953억원을 기록하며 다소 회복된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영업이익률은 5% 수준에 그치고 있다.

STX팬오션 역시 STX그룹으로 편입된 후 한동안 실적이 늘어나며 지난 2008년에는 K-GAPP 연결기준으로 매출 9조6천51억원, 영업익 7천354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업황이 나빠지면서 2009년 매출은 4조6천182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고, 영업손익은 적자 전환했다. 이후 손실 폭은 다소 줄었으나 여전히 작년 영업손실이 230억원(IFRS 연결)을 기록할 정도로 수익성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인수한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는 그나마 업황의 영향을 덜 받았음에도 작년 영업익(연결 기준)이 전년보다 36.5% 줄어든 465억원에 그쳤다.

금융위기 직후 인수한 기업의 실적도 저조한 상태다.

산업플랜트 엔지니어링 업체인 제일종합기술의 경우 STX로 인수된 직후에는 301억원이던 매출(2009년)이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져 2010년 161억원, 2011년에는 148억원을 기록했다. 수익성도 저하돼 2009년(-26억원)과 2010년(-42억원)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작년에도 단돈 2억원의 영업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2009년 인수한 네덜란드 풍력발전기 제조업체인 '하라코산유럽'(현 STX윈드파워) 역시 작년과 재작년 모두 -25억원, -3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STX그룹이 지난 2008년 야심 차게 인수한 '아커야즈(현 STX유럽)' 역시 세계 최대의 크루즈선 건조업체임에도 피인수된 후 한동안 적자를 면치 못했다. 실제로 STX유럽의 순손실은 2009년 -7억8천200만 NOK(-1천564억원), 2010년 -3억1천300만 NOK(-626억원)을 기록했다.

그나마 작년에는 자회사인 STX OSV의 영업익이 전년보다 두 배가량 급증한 22억700만 NOK(4천414억원)을 기록한 덕분에 STX유럽의 순익도 13억6천100만 NOK(2천722억원)를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STX OSV의 매각작업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어, STX유럽의 수익성이 다시 나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시급해진 재무구조 개선..업황 회복이 관건 = STX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와중에도 중국에 초대형 조선소를 건설하는 대규모 투자를 지속했다. 또, STX유럽을 인수하고 추가 지분을 확보하는 데만 총 1조원 가량을 투입했다.

하지만, 업황 악화로 수익성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재무구조도 크게 악화됐다.

실제로 STX팬오션의 부채비율(K-GAAP 연결기준)은 2007년 67.84%에서 작년에는 188.88%까지 증가했다.

STX조선해양의 부채비율(K-GAAP 연결기준)도 2007년 223.21%에서 2009년 1041.11%까지 급증했다가, 재작년(670.50%)부터는 다소 줄었음에도 여전히 539.05%(작년 말)를 기록 중이다. 조선업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높은 수준이다.

그 결과 그룹 전체의 부채비율도 200%에 육박하게 됐다. 이 때문에 작년 말부터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STX그룹의 '자금악화설'이 꾸준히 거론됐고, 올해 들어서는 '재무약정 대상'으로까지 거론됐다.

그러자 STX그룹은 부랴부랴 재무안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강 회장은 지난 3월 인사에서 그룹 CFO의 직급을 사장급으로 높이고, 대우증권 출신의 IB 전문가를 ㈜STX 재무1본부장(전무)로 영입했다. 재무라인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또, 그동안 그룹의 핵심부서로서 M&A 작업을 총괄하던 '전략기획본부'를 '재무기획본부'로 이름을 바꿔 CFO 산하로 이동시켰다. 그룹 전략의 중심이 'M&A' 에서 '재무안정'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어 STX그룹은 최근 자체적인 재무개선 계획을 내놓았다. 알짜 계열사인 STX OSV 매각과 더불어 STX중공업 등 핵심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고 STX다롄 등을 증시에 상장해 총 2조5천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STX그룹의 재무구조가 근본적으로 안정되려면 주력 사업의 업황 회복이 필수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신용평가사의 한 연구원은 "STX그룹의 총 차입금은 10조원에 달하고 이중 선박금융에 관련된 것만도 2조원을 넘는다"며 "결국 조선과 해운 등의 주력사업에서 돈이 안 나오면 금융비용의 부담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STX그룹 관계자는 "현재 그룹의 채무 중 상당수가 장기부채인데다가, 계획대로 2조5천억원의 유동성이 확보되면 재무구조는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해운업황 지표와 상선 발주 실적도 개선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STX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없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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