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황병극 기자 = 연초 중국 경기우려와 금융시장 불안에 정작 원화 가치가 위안화보다 더욱 곤두박질하고 있다. 달러-원 환율이 달러-위안 환율 상승을 뒤쫓아가는 수준을 넘어 훨씬 앞질러간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원화가 위안화와 높은 상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위안화보다 유동성이 높아 헤지거래 등에 유리한 '프록시(proxy)' 통화로 꼽히는 탓이다. 즉 달러-원 환율이 중국 금융불안과 위안화 약세 기조를 고스란히 전염 받은 것을 넘어 앞으로 위안화 절하에 대한 기대감까지도 가격에 선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원자재 상품 통화에 버금가는 원화 약세

12일 연합인포맥스의 통화별 등락률 비교(화면번호 2116번)를 보면 연초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ZAR)와 호주 달러화(AUD), 러시아 루블화(RUB) 등 이른바 원자재 상품통화의 약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원화도 이에 버금가는 약세를 전개하고 있다.





연초 원자재 상품 통화의 약세는 중국발 경기둔화에 국제유가가 급락한 영향이 맞물린 결과다. 이들 원자재 상품 통화는 원유, 철광석, 금, 구리 등 세계적으로 주요 원자재를 수출하는 국가들의 통화로 국제유가 하락에 더욱 큰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는 올해 들어 전일(11일)까지 미국 달러화에 대해 무려 8.13%나 절하됐다. 같은 기간 호주 달러와 뉴질랜드 달러도 4.06%와 4.11% 약세를 연출했다. 러시아 루블화도 5.60%나 약세를 보였다.

국제유가가 연일 추락하면서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공포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두바이유는 12년 만에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서 11일 현재 28.07달러까지 곤두박질했다.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도 12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 위안화 약세를 넘는 원화 약세…위안화 프록시 전락

특이한 것은 원화가 원자재 상품 통화와 맞먹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연초 이후 전일까지 원화 절하률 3.05%는 위안화 절하율을 넘어선 수준이다.

같은 기간에 중국의 역외 위안화(CNH)와 역내 위안화(CNY)의 절하율 0.31%와 1.26%에 그쳤다. 중국 위안화 약세가 달러-원 환율 상승에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나, 정작 원화 약세가 위안화 약세폭보다 두드러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원화의 높은 유동성과 위안화 절하 기대감 등이 달러-원 환율에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원화가 위안화의 프록시 통화로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외국계은행 외환딜러는 "연초 달러-원 환율이 위안화 약세를 재료로 상승하고 있으나 위안화보다 더욱 약세다"며 "지난해 12월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인 탓도 있지만 위안화 약세에 대한 기대감이 원화에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위안화가 절하되고 있으나 중국 당국에 의해 일부 관리된 측면이 있다"며 "반면 원화는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좋은 데다 위안화가 추가로 약세를 보일 것이란 기대감이 환율에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딜러는 "시장에서 원화가 다른 상품통화에 비해 안전자산으로 평가받지만, 중국 이슈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금융불안이 진행될 경우 원화도 신흥국 통화와 차별화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지만, 중국 금융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양호한 국내 펀더멘털만으로 원화가 신흥국 통화와 차별화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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