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교도소 가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업(業)을 접고 빠져나오거나 전업하라"

작년에 퇴출당한 저축은행 소유주 A씨는 다른 저축은행 주인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대한민국에서 저축은행 오너로 살려면 성직자가 돼야 하는데,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하소연도 덧붙였다.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친인척과 고향 선후배의 연줄 망(網)이 강력한 이 나라에서 돈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회사의 소유권을 개인이 갖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온갖 민원과 청탁의 표적이 되면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 혼자서 온전하게 버티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인에게 저축은행의 소유권을 맡겨놓는 현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제3ㆍ4의 부실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대주주들이 나쁜 놈이고 도덕적 해이를 저지른 파렴치범이 되는 현실이 너무나 가혹하다는 A씨의 토로는 이어졌다.

오너는 여신대출심사위원회에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친인척과 고향 선후배의 청탁은 독하게 마음먹고 뿌리치지만 힘센 정치권, 권력 기관의 민원은 허투루 못 다룬다. 권력 실세와 호가호위를 빙자한 각종 PEF 투자 요청 제안은 담보가치가 애매한 물건이 대부분이다. 한두 번 거절해보지만, 청탁은 더욱 정교해지고 어떤 경우는 저축은행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불법 대출을 요구하며 흥정까지 제의해 온다. 집요한 과정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독종 오너는 소수에 불과하다. 지속해서 거부하면 표창이 어디서 날아들지 모른다. '돈 장사하는 놈이 사람 무시한다'는 딱지가 붙고, 조금이라도 부실기미가 보이면 사소한 사안도 관련 기관과 감독기관에 투서로 제보한다. 생사여탈을 쥔 기관의 인사에게 밉보이는 행위는 치명적이다. 사업의 영속을 위해 피아(彼我)가 누구인지, 우적(友敵)이 구별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주들은 살얼음판 걷듯이 관계비용(Relationship cost)을 치른다.

이 과정에서 금융이 해서는 안 될 경계가 조금씩 흐릿해진다.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 오너의 긴장감과 집중력도 떨어지고 바늘 도둑은 소도둑으로 변질한다. 살아남으려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담을 넘나들다가 종국에는 철창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 사회는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능력이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고 부당한 청탁이다. 법률이 그어놓은 배임과 알선수뢰의 경계선은 희미하다. 저축은행들은 강펀치 한방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가랑비와 잔 매가 쌓여 총체적인 부실로 치닫고 종국에는 쓰러진다.

A 씨는 토로했다. "잡혀 들어가 봐야 비로소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지른 지 알게 된다".

저축은행 오너들은 요직 관료들처럼 엄격한 자기관리(Discipline)와 기강이 몸에 밸 훈련의 시간이 없었던 상인(商人)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런 연유로 전 세계적으로 금융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의 소유권을 개인에게 허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개인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리스크를 전적으로 개인에게만 부담시키지 않으려는 자본주의의 오랜 경험칙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축은행의 소유권은 개인이 아닌 기관에 맡겨야 하며 견제와 균형을 담보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단계적으로 당국이 저축은행 내부에 공적 감시인을 파견하고 이 감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식도 마련해 잠재 범법자들을 구출해줘야 할 것이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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