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기획재정부 등 경제 부처가 4대 부문 개혁을 향해 전방위로 뛰면서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기재부 등이 국회를 상대로 관련 법 통과를 읍소하면서 공포마케팅도 강화하고 있어서다. 골든타임인 지금 관련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자칫 제2의 외환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게 경제부처의 주장이다. 옳은 말일 수 있지만 경제정책 당국으로서 품격을 잃고 있다는 비난도 뒤따랐다. 경제를 이 지경으로 운용한 당사자여서다.

경제부처들이 장기 성장전략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 공포마케팅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 경제기구는 신자유주의에 바탕한 기존 성장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인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사회적인 논의 구조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효율성이나 시장 기능만 중시하는 영미식 가치가 아니라 불평등 완화를 위해 노력하는 유럽식 가치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가 된 것이다. 민간 부문에서 동력을 찾지 못하는 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도 재정이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트리클 다운은 없다…이제 포용적 성장이 대세

OECD는 올해 각료이사회 주요 이슈로 '포용적 성장을 위한 생산성 제고(Enhancing productivity for inclusive growth)'를 선정하는 등 소득불평등 해소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라는 개념을 본격 논의하기로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원국들의 소득불평등이 확대되는 추세이며 좀처럼 시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포용적 성장은 오바마의 경제 가정교사로 알려진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학교 총장이 이끄는 포용적 번영위원회(Commission on Inclusive Prosperity) 등이 지난해부터 제기한 핵심 의제다. 서머스 전 총장과 영국 노동당의 그림자 내각 재무장관인 에드 볼스가 공동 의장을 맡고 있는 이 단체는 지난해 이맘때'중산층 살리기'를 주제로 하는 종합보고서를 내면서 '포용적 번영'이라는 화두를 자본주의의 본산인 영국과 미국에빠르게 확산시켰다.

보고서에 따르면1950년 이후 대부분 선진 산업국가의 경우 생산성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상위 10%를 제외한 서민과 중산층 소득이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그 과실이 전 계층에 골고루 나누어질 것이라는 낙수효과(trickle-down)가 최근 경제지표로 보면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OECD도 최근 보고서에서 회원국의 25년전 상위 10%의 소득(가처분소득 기준)은 하위 10% 소득의 7배 수준이었으나, 현재 9.6배로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는 24개 회원국 가운데 8번째로 상대적 빈곤율이 높은 나라로 지목됐지만 포용적 성장이라는 의제가 정부 차원에서 검토된 흔적을 찾기 어렵다.

◇유일한 재정 흑자국가…정부는 책임 다했나

정부는 공포마케팅을 강화하면서도 우리가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한 통합재정수지 흑자국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재정을 소극적으로 운용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는 사실이 함께 알려지는 걸 꺼린 결과로 풀이된다.

재정 건전성은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이른바 통합재정수지를 잣대로 따지는 게 글로벌 표준이다. 우리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누적 통합재정수지가4조1천억원 흑자로 집계됐다. 500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등이 포함된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됐다.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35.9%로 OECD 평균 118%(2013년 기준)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OECD는 추가적인 재정건전화 조치가 필요치 않은 나라로 한국을 지목하며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우회적으로 주문하기도 했다.매우 양호한 재정 여력을 가지고 있지만기재부 등이 지나치게 재정의 건정성만 강조하면서 오히려 경제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는 의미다.

우리의 전체 일자리에서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이 6%에 불과한 것도 재정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탓이다. OECD의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 평균은 15%에 달하고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일부 선진국은 30%를 넘어선다. 이제 정부도 재정을 통해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 창출의 책임을 민간에만 떠넘기는 정부의 공포마케팅은 이제 식상할뿐이다.(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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