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다정 기자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국내 재벌 가운데 현직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창업세대 오너 경영인이다.

올해 68세를 맞은 김 회장은 여전히 창업 당시와 다름없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그룹 전체를 짓누르는 재무적 압박을 덜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어서다.

그런 와중에도 김 회장의 공격적 사업 확장 '집념'은 여전하다.

김 회장은 1983년 미래 첨단산업이 신성장동력이 돼 먹거리를 창출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미래는 도전하는 자의 것'이라는 경영화두는 김 회장에게 신사업 진출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반도체 사업 진출에 대한 김 회장의 '집념'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젓기도 했다. 역시나 뜻대로 일은 술술 풀려나가지 않았다.

반도체 웨이퍼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실트론을 만들었지만 6년만에 접어야했고,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며 동부전자를 설립한 뒤에는 외환위기의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수한 아남반도체는 두고두고 동부그룹의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가 됐다. 최근까지 동부그룹이 재무리스크에 시달리는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것도 이러한 '원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김 회장의 왕성함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반도체와 제철사업에 이어 최근에는 로봇과 LED 사업은 물론 곤충사업과 태양광 사업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2∼3년간 동부그룹이 첨단과 틈새를 오가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넓히면서 자연스레 인수ㆍ합병(M&A)도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룹 전체적으로 여전한 재무적 부담이 완화될 여지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내실 다지기 보다는 새로운 사업 확장에 올인하고 있는 모습에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김 회장의 '반도체 집념'…지금까진 '惡手' = 김준기 회장에게 반도체는 말 그대로 전부였다.

그러나 '짝사랑'에 대한 지난 10년간의 댓가는 혹독했다.

동부그룹은 지난 1997년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며 동부전자를 만들었다. 곧바로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인한 시련은 컸다.

태풍이 지나간 2000년 동부그룹은 비메모리 반도체로 눈을 돌려 일본의 도시바와 손을 잡았다. 2002년에는 아남반도체를 인수했다. 실적은 기대를 따라오지 못했다.

2006년에는 동부일렉트로닉스로 사명을 바꾸면서 재건의 의지를 다졌지만 극심한 반도체 업황의 부진은 동부그룹을 나락의 길로 빠지게 하는 도화선이 됐다.

돈을 벌지 못하는 가운데 부채 상환 압박은 점점 더 커진 것이다. 당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13개 금융기관으로부터 끌어다 쓴 대출의 이자만 연간 1천억원에 달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또 한번 시련을 안겨줬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손에서 결코 놓지 않았다. 결국 동부한농과의 합병을 선택했다. 이렇게 해서 새로 출범한 곳이 동부하이텍이다.

동부하이텍은 아날로그반도체로 사업 구조를 특화하는 체질 개선에 나섰다. 결국 10년만에 동부그룹은 반도체 사업분야에서 첫 흑자롤 냈다.

갈길은 여전히 멀다. 국제회계기준 별도기준으로 동부하이텍의 순차입금은 작년말 6천455억원에 이른다. 부채비율은 329%로 작년 3월 말의 275%에 비해 더 높아졌다.

김 회장은 `반도체 살리기'에 아직도 올인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문가 영입을 통해 사업의 안정성을 꾀하기 위한 실험에 나섰다.

지난 3월 최창식 전 삼성전자 시스템LSI 파운드리센터장이 동부하이텍 대표이사로 영입됐고, 이찬희 전 매그나칩 반도체 부사장은 파운드리 본부장(사장)으로 왔다.

동부하이텍의 조직도 시스템반도체 위탁 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사업과 시스템 반도체 자체 설계와 생산을 책임지는 브랜드사업의 두 축으로 나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의 집념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간 참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사업을 접었을만도 한데 아직도 상당한 열의를 보이는 것을 보면 창업주가 아니면 힘든 일이다"고 평가했다.

다른 관계자는 "창업주의 장점은 사업기회를 포착해 밀어 부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메랑이 돼 그룹 전체에 부담을 주는 사례가 그간 적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 재무개선약정 체결에도 M&A는 'Go' = 동부그룹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했다. 2009년에는 김 회장이 직접 사재를 출연해야 했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했다고 당장 '부도'가 날 위험성이 있는 기업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시장의 싸늘한 시선은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재무적 취약성 때문에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용이하지 않은 점은 기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동부그룹은 김 회장의 사재출연 등으로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린 상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크레디트 시장에서 '요주의' 모니터링 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화중에도 동부그룹은 왕성한 M&A를 진행해 왔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진행된 M&A만도 7∼8건에 달했다.

이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갈리고 있다.

신용평가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소규모로 M&A를 많이 진행하고 있는 동부한농에 대해 "규모가 작더라도 재무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동부한농은 외부자금을 유치하면서 재무적 투자자들을 주주로 맞았는데 기업공개를 통해 재무적 투자자들의 엑시트(EXIT)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주력인 농약사업 이외에는 뚜렷한 성장성을 담보하지 못하다 보니 연관 업종과 사업으로 M&A를 진행해 왔다.

력사업이 농약이다 보니 성장성이 높지가 않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직계열화 차원에서 연관 업종으로 스몰딜을 많이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노리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차원의 M&A이다"고 강조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소규모 차원의 M&A는 재무구조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성장 확대를 위한 M&A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부그룹 계열사들의 실적은 여전히 시원치 않다.

그러나 그룹 전체적으로 볼 때, 무엇보다 핵심 계열사들의 실적이 좋지 않다.

동부화재와 동부증권 등 금융사를 제외하고는 최근 5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다.

IFRS 별도 기준으로 동부건설은 지난해 영업손실이 1천483억원에 달했다. 매출도 전년의 2조1천542억원에서 1조4천172억원으로 고꾸라졌다.

동부제철도 작년에 지난해 2천168억원의 순손실을 봤다. 2조원에 달하는 순차입금의 이자 비용이 수익성 악화로 작용했다. 영업이익도 전년의 1천40억원에서 203억원으로추락했다.

시장의 관심 대상인 동부하이텍도 작년에 93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증권사의 한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동부그룹의 취약한 재무구조는 올해 동부하이텍이 흑자를 내 턴어라운드를 할 수 있느냐에 모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 인수해 보니 실적도 가지가지 = 동부그룹이 M&A를 통해 사들인 기업들의 실적은 엇갈린다.

작년 7월 동부정밀화학이 인수한 로봇 전문업체인 다사로봇(현 동부로봇)은 일단 합격점이다.

김준기 회장이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를 했을 만큼 김 회장의 로봇사랑은 대단하다. 동부하이텍과의 시너지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동부로봇은 작년에 IFRS 별도기준으로418억원의 매출을 냈다. 영업이익도 17억원을 달성했다. 소규모 기업치고는 적잖은 이익이다.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기준으로 89.52%에 불과할 정도로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작년 3월 동부하이텍과 동부CNI가 158억원을 들여 인수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회사인 화우테크(현 동부라이텍)는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다.

작년 3월 36억원을 기록한 적자는 같은 해 말에는 234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태양광 사업 진출 의지를 다지면 작년 7월 인수한 잉곳ㆍ웨이퍼 기업인 네오세미테크(현 동부솔라)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알티반도체(현 동부LED), 천적곤충업체 세실(현 동부세레스) 등 피인수 기업과의 시너지가 뚜렷히 나타날 지 여부도 좀 더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미래 첨단 사업 위주로 적극 투자에 나서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특별한 시너지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면서 "실적이 가시화되고재무적으로도 뒷받침이 돼야 시장의 우려도 줄어들 것이다"고 말했다.

dj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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