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수백억~수천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적인 채권펀드들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 Grexit)에 대비해 포트폴리오 보호 작업을 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미국시간) 보도했다.

저널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유럽에 대한 익스포져(위험노출액)를 줄이는 쪽으로 운용 전략을 짜고 있다.

대신 수익률은 낮더라도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 등을 사거나,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그리스 국채를 공매도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널은 채권펀드들의 이런 선택은 그리스 위기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우려를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웨스턴 애셋 매니지먼트(운용자산 4천470억달러) 스티븐 월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유럽 은행에 대한 익스포져(위험노출액)를 지난 3월 1.7%로 전달보다 1%포인트 줄였다고 밝혔다.

월쉬 CIO는 "미국이나 신흥시장에서 하이일드채권은 계속 사고 있지만, 유럽 은행채로 조만간 방향을 선회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튼 밴스(운용자산 1천980억달러)의 마이클 시라미 채권 총괄매니저는 자신이 운용하는 66억달러 규모의 펀드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국채에 대해 숏포지션을 구축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2.7%였던 프랑스 국채에 대한 숏포지션을 지난달 말에는 5.3%로 두 배 가까이 늘렸다.

인베스텍 애셋 매니지먼트(운용자산 1천억달러)의 존 스탑포드 채권 공동대표는 "유로존 붕괴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최근 수 주 동안 달러를 사고 유로화와 호주달러는 팔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핌코의 빌 그로스 공동 CIO는 지난 6개월 동안 자신이 운용하는 토탈리턴펀드에 미국 국채 비중을 늘려왔다고 밝혔다.

토탈리턴펀드는 운용자산이 2천590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로, 핌코를 대표하는 펀드다.

토탈리턴펀드에서 미 국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10월말 19%에서 지난달 말에는 31%로 증가했다.

WSJ는 그로스 CIO는 업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미 국채를 매입한 매니저 중 한 명이라고 전했다.

그는 "미국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쁜 선택지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나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로스 CIO는 유로존에 대한 투자를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았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채를 다소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 국채와 함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독일 국채(분트)의 비중은 지난달 줄였다.

712억달러의 운용자산을 보유한 프린시펄 인베스트먼트의 크레이그 베이세이 채권 부문 대표도 미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점치면서 "유로존은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고 진단했다.

또 "그리스와 포르투갈 같은 취약국은 앞으로 유로존에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채권펀드 매니저들은 한결같이 그리스 위기의 확산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그로스 CIO는 "그리스는 도화선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그리스 한 곳은 작은 폭죽 수준이자만 훨씬 큰 폭발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뱅크런 가능성이 정말 걱정거리"라면서 그리스에서 예금 인출 사태가 심화하면 유럽중앙은행(ECB)이 개입하거나, 그리스가 2차 총선 전에 돌연 유로존을 탈퇴하는 사태가 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라미 매니저는 "정말 두려운 것은 복수의 국가들이 유로존을 탈퇴하고 국가 부도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면서 "단기적으로는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스탑포드 대표는 "6월 17일 예정된 그리스의 2차 총선 이후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더 커질 것"이라면서 "유럽의 정책 담당자들이 단기간에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내다봤다.

sjkim2@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